형이 해줬던 오므라이스…

『5살부터 PTSD,ADHD,조울증』1부 PTSD,트라우마 편 6편

by 조영철

오므라이스 위의 웃는 얼굴


지금까지 저는 어릴 적 저의 트라우마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에는 기억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주 짧고 흐릿한데도 유난히 마음에 오래 남아 있는 따뜻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형이 만들어준 오므라이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따뜻함과 조용한 울림이 그 장면 속에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방치된 집, 형의 손

그 시절, 저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고, 형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습니다. 저희가 살던 집은 부모의 보살핌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공백이 많았습니다. 친부는 ‘생활비가 없다’는 말만 반복하며 정말로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형은 늘 집에 오지 않는 친부에게 홀로 생활비를 받으러 가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형은 그 당시 그 나이에 사이 안 좋은 부모 사이에서 상처받는 아이였고 동생을 보호해야 했던 초등학생 아이였습니다. 그 당시의 엄마는 우울증과 경제적 압박 속에서 알바를 병행하며 매일을 겨우 버티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돌아온 엄마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그대로 잠에 드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배가 고파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말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없었습니다. 엄마를 깨운다는 건 미안하고 두려운 일이기도 했습니다. 집은 쉼터가 아닌, 조심스럽게 지나가야 하는 지뢰밭 같았습니다.


그런 날이면 형이 조용히 움직였습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형은 언제나 제가 울지 않도록, 무너지지 않도록 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형은 조용히 제게 말했습니다.


“영철아, 오므라이스 해줄게.”


13살이었던 형도 분명 어리고 약한 아이였습니다. 그 자신도 무너지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형은 그 와중에도 저를 챙기고 돌봤습니다. 부모가 감당하지 못한 빈자리를, 형이 채우고 있었던 겁니다.




웃는 얼굴, 말 없는 위로

형이 만들어준 오므라이스는 요리라고 하기엔 정말 단순했습니다. 남은 밥을 덥히고, 계란을 대충 풀어 프라이팬에서 익혀서 덮고, 그 위에 케첩으로 웃는 얼굴을 그린 것. 눈, 코, 입을 그려 넣은 그 작은 시도는, 어린 마음에도 너무나 선명하게 각인되었습니다.


그날 형은 말이 없었습니다. 숟가락을 내밀며 저를 바라보던 그 눈빛은 말 대신 다정함을 담고 있었고, 조용한 위로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그 오므라이스를 받아 들고 거의 유일하게 웃었던 것 같아요. 다섯 살 무렵부터 시작된 가정 내 폭력과 반복된 불안은, 식사마저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상황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형의 밥은 달랐습니다. 위협이 아닌 배려였고, 강요가 아닌 선택이었습니다.

오므라이스를 보면서 행복했던 나


그때 저는 처음으로 ‘먹어도 되는 밥’을 마주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 한 끼가 저를 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형이 그때 웃고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그 눈빛은 선명히 떠오릅니다. 화려하지 않은, 담백하고 조용한 다정함이었습니다. 그건 아이가 아이에게 건넨 위로였고, 한 가정의 가장 약한 고리가 어쩌면 가장 강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건넨 마지막 따뜻함

돌아보면, 형도 누구보다 버티고 있었을 것입니다. 부모의 역할을 떠맡은 13살의 아이는,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견디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치열함 속에서도, 형은 저를 챙겼습니다. 한 끼 밥을 통해, 말 한마디 없이 그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 오므라이스는 단순한 요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메시지였습니다.


‘넌 혼자가 아니야.’


그날 이후로도 많은 일들이 있었고, 형과의 관계도 여러 갈래로 흘러갔지만, 그 오므라이스는 언제나 제 안에 남아 있습니다. 배가 고팠던 그날, 어쩌면 마음이 더 고팠던 그날. 형은 저에게 가장 따뜻한 한 끼를 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당시 형은 트라우마 속에서 저를 지켜준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모가 감당하지 못한 무게를 감내했고, 자신도 상처 입은 채로 저를 품어주었습니다. 그 사실이 이제야 또렷이 보입니다.


지금도 그 오므라이스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케첩으로 그린 웃는 얼굴, 따뜻한 밥, 조용히 건넨 숟가락,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어린 저 자신까지도.


형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습니다. 웃지 않아도 웃는 얼굴을 그려주었습니다. 그건 그저 한 끼 식사가 아니었습니다. 무너진 집 안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전할 수 있었던 마지막 따뜻함이자, 지금까지 제 마음속에 남아 있는 가장 순한 기억입니다.




이 글은 『5살부터 PTSD,ADHD,조울증』 시리즈 1부, 트라우마 편의 6편입니다..

아직 회복 중인 마음으로, 17년간의 흔적을 조심스럽게 꺼내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