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현장 르포<학교선생님편 5편>
공교육이 다시 의미 있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입시로 뜨거워진 교실과 행정에 묶여 있는 선생님의 사이 간극을 좁혀야 합니다. 학교가 다시 ‘사람’을 중심에 두는 공간이 되기 위해, 우리는 교사의 존재와 공교육의 구조를 다시 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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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이 불을 끄듯이, 선생님은 학생의 불안을 잠재우고 가능성에 불을 붙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시험 성적이라는 숫자 이면에 숨겨진 고민, 방황하는 청소년기의 갈피, 감정 기복 속에서 흔들리는 자존감을 다루는 존재가 바로 교사입니다. 단지 교과 내용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 전체를 함께 고민하는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교사는 점점 “교과 지식을 공급하는 서비스업자”로 축소되고 있습니다. 교무실에서 만난 한 화학 선생님께서는 “수업보다 공문이 더 무섭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업 준비보다 행정 서류가 우선이 되고, 공감보다는 평가 지표가 중요한 현실 속에서 교사는 점점 고립되어 갑니다. 학생을 바라볼 시간은 줄어들고, 서류 더미만 쌓이는 교무실. 소방호스를 들고도 출동 명령을 받지 못하는 소방관처럼, 오늘날의 교사들은 교실 안에 갇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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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도한 행정업무: 생활기록부 기재, 수업 계획서 및 결과 보고서, 학교평가 지표와 내부 감사 대응까지. 하루 중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곳이 학생이 아니라 컴퓨터 모니터 앞이 되어버린 교실입니다. 교사는 더 이상 ‘아이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문서를 작성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 실적 중심 평가: “몇 명을 대에 보냈는가”가 교사의 능력으로 평가되는 현실입니다. 담임교사의 진학 실적이 인사나 평가에 반영되는 구조 속에서, 학생은 ‘가능성’이 아닌 ‘성적’으로만 해석됩니다. 교사는 진정성 있는 조언보다 무난한 안전지원을 권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패를 감당해 줄 구조가 없기 때문입니다.
• 학부모 및 교육청 민원: 수업 방식, 숙제 분량, 심지어 말투와 표정까지 민원이 되는 현실입니다. 교사는 점점 방어적으로 바뀌고, 아이들과 거리를 두게 됩니다. 아이들이 잘못했더라도 생활 지도를 하려다 오히려 징계나 감사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통보다는 회피가 익숙해지는 구조 속에서 교실은 침묵과 거리감으로 채워집니다.
이러한 구조가 겹칠 때, 교사는 더 이상 불을 끄는 사람이 아니라, 서류와 실적을 관리하는 중간 관리자처럼 움직이게 됩니다. 마음을 쓰려다가 상처를 받고, 목소리를 내려다가 침묵하게 되는 현실. 그렇게 교사는 점점 ‘교육자’가 아니라 ‘직장인’이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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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개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교사의 시간을 ‘학생’에게 돌려주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 공식 상담 시간 확대: 매주 1회 이상 ‘담임 상담 데이’를 시간표에 반영해 보십시오. 교사도 마음 편히 학생을 만날 수 있어야 하고, 학생도 부담 없이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상담이 아니라, 공교육이 학생과 함께 숨 쉬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 행정 전담 인력 배치: 각 학교에 ‘학사 매니저’나 ‘행정 보조 전문 인력’을 배치해, 공문 작성, 자료 입력, 계획서 보고 등의 업무를 전담하게 하면 어떨까요. 교사는 수업과 생활 지도에 집중해야 합니다. 교육이라는 본질적인 업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업무 구조를 재편해야 합니다.
• 교사 연봉 현실화 및 책무 강화: 사명감은 열정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보상은 중요한 촉매입니다. 교사의 업무 강도와 정서 소진에 걸맞은 급여 체계를 갖추되, 담임·상담·생활지도 등 핵심 책무에 대한 평가는 더 정밀하게 강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명감’은 의무가 아니라 제도와 구조가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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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가 바뀌는 동안, 학생도 스스로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공교육의 한계 속에서도 배움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 기회 포착: 한 명의 명 선생, 하나의 프로젝트가 인생을 바꾸기도 합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질문해 보세요. 독서토론, 수행평가, 자율 동아리 등 학교 안에 숨어 있는 수많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 거리 두기: 반대로 어려운 선생님을 만났다면, 정답만 맞히고 감정 소비는 줄여보세요. 교과 지식은 인터넷과 참고서로도 얻을 수 있지만, ‘삶의 태도’는 교실 안에서만 익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방해가 될 때는, 단호히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는 체념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입니다.
학생은 학교를 선택할 수 없지만, 학교를 ‘활용’할 수는 있습니다. 학교가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나의 성장이 멈춰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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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은 점수라는 가속 페달을 밟습니다. 공교육은 방향을 잡아주는 핸들과 엔진 점검 장치를 담당합니다. 둘 중 하나라도 고장 나면, 차량은 제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학교가 사교육을 흉내 낸다는 것은, ‘속도만 있는 차’를 만들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학원이 인성 캠프까지 흡수하려 한다면, 결국 본연의 속도를 잃게 됩니다. 서로의 역할은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보완적일 수 있습니다.
공교육은 기어박스, 사교육은 터보엔진. 공교육은 삶의 방향과 균형을 잡고, 사교육은 속도를 높입니다. 두 축이 서로를 존중하고 조율할 때, 우리는 교육이라는 긴 여정을 완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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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을 바꾸기 위해서는 교사 자체를 새롭게 키워내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사범대와 교직 이수 과정은 단지 교과 전달 능력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 상담·코칭·관계 기술 중심 교육: 교사는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중재자입니다. 수업 설계, 정서적 지지, 갈등 조정 능력이 핵심 역량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 실습 기간 확대 및 현실화: 교육실습 기간을 단 4주에서 한 학기 또는 한 해로 확장하여, 교사 지망생이 실제 행정 구조, 학부모 응대, 생활지도까지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소방관은 훈련소에서 불을 직접 만나야 합니다. 교사도 ‘학생-학부모-행정’ 셋의 불을 미리 겪어야 진짜 실전에서 버틸 수 있습니다.
• 멘토링 시스템 강화: 현직 교사와 예비 교사를 연결하는 멘토링 체계를 공고히 하여, 좋은 교사의 경험이 전수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교사 문화도 점차 바뀌어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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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적 개혁도 중요하지만, 교사 한 명의 작은 시도는 오늘의 교실을 바꿀 수 있습니다. 성적과 입시로 압축된 학교 안에서도, 삶을 배우는 수업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중학교 시절, 진로 선생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한 달 미션”을 제안하신 적이 있습니다. 점수를 위한 과제가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평소에 ‘하고 싶지만 잘 못했던 일’을 정해, 4주간 시도해 보는 실천 과제였죠. 저는 그때 ‘일주일에 책 한 권 읽기’를 정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4권을 완독 했고, 그 경험은 제게 처음으로 ‘내가 꾸준히 뭔가를 해낼 수 있구나’라는 자존감을 심어줬습니다.
발표 시간에는 각자 겪은 감정과 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친구는 ‘매일 가족과 5분 대화하기’를 도전했고, 또 어떤 친구는 ‘혼자 편의점 가서 물건 사 보기’ 같은 작고 사소한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 친구도 있었지만, 그 시간은 누가 더 잘했는지를 따지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변화하려 한 노력’ 자체를 응원받을 수 있었던, 드물고도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또 한 번은 “집에서 가장 오래된 물건을 가져오라”는 과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외할머니가 젊은 시절부터 한 장 한 장 모으셨던 옛 신문 뭉치를 가져갔습니다.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광고, 기사, 사건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 시대의 공기와 사람들의 삶이 느껴졌습니다. 친구들은 ‘신문이 이렇게 오래 보관될 수 있구나’보다, ‘할머니가 이런 걸 왜 모았을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발표가 끝난 뒤, 친구들과 조용히 그 시절 이야기와 가족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도 큰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수업에서 배운 것은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나와 가족,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에 깃든 ‘이야기’였습니다.
이처럼 교사의 작은 실험은 교실의 공기와 관계의 온도를 바꿉니다.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삶을 배우는 공간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그것이 공교육이 아직도, 여전히, 의미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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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은 하루아침에 완벽해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사는 학생의 불안을 끄고, 가능성의 불씨를 살릴 책임을 가진 ‘소방관’**이 되어야 합니다. 이 역할은 사명감만으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제도는 교사가 학생을 마주 볼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를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동시에 **학생은 완벽하지 않은 제도 속에서도 배움을 놓치지 않는 ‘능동적 학습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르침이 부족하더라도, 배울 의지가 있는 사람은 어디서든 배웁니다.
“학교가 나를 구원해 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학교를 활용해 저를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교사가 모든 걸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누군가의 불을 끄는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이 두 문장이 교실 안에서 함께 울려 퍼질 때, 공교육은 다시 의미 있는 공간으로 숨을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날, 교사는 더 이상 서류봉투를 든 직장인이 아니라, 학생들의 미래를 책임지는 진짜 교육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학생은 더 이상 수동적인 수용자가 아니라,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해 나가는 ‘작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