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 구조“ 프롤로그]왜 한국 교육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가
“한국은 누가 죽어야 공론화됩니다.”
최근 2025년 6월, 부산에서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 세 명이 함께 옥상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새벽 1시 39분, 친구이자 동료였던 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20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유서에는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 ‘장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학교폭력도, 외부 가해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우리 교육이 매일같이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정상적인 스트레스’가 있었을 뿐입니다.
일례로 저는 국가교육위원회에서 학생 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때가 고2였습니다. 중간고사 전날, 국어 과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발표 수행평가를 마치고 곧바로 위원회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저도 학생 때 그 무게를 동시에 짊어지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수많은 정책 보고서, 학생 설문, 현장 방문, 토론을 접했습니다. 그런데도 정작 이런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체계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학생의 목소리는 보고서에 남았지만, 학교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은 전태일 열사였습니다. 그분도, 이 학생들도 모두 말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는 구조 때문에 죽음을 선택해야 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구조가 얼마나 오래, 얼마나 집요하게 사람을 몰아붙이는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또 한 번, 세 명의 학생이 같은 선택을 해야만 우리는 다시 묻기 시작합니다.
2023년 한 해 동안 자살로 세상을 떠난 10대는 약 330명에 달합니다. 같은 해 기준, 대한민국 10대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약 7.9명으로, 여전히 OECD 평균을 웃돕니다. 2024년 통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의 잠정 수치만으로도 그 심각성은 여전합니다. 그 가운데 단 세 명의 이야기일지라도, 함께 같은 옥상에서 떨어진 이 비극은 단순한 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경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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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등학생의 일상을 대충 그려보겠습니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멈추지 못하는 그 루틴입니다.
• 3월: 개학 첫 모의고사(교육청 모의고사)
• 4~5월: 수행평가 1학기 중간고사 또 수행평가
• 6월: 평가원 모의고사, 기말고사, 세특 작성을 위한 눈치 보기
• 7~8월: 여름방학( 수능 공부 또는 선행학습)
• 9월: 수행평가 9월 평가원 모의고사
• 10월: 또 수행평가 10월 교육청 모의고사
• 11월, 12월: 2학기 기말고사 생활기록부 마무리
숨 쉴 틈이 없습니다. 놀 공간도, 멈출 시간도 없습니다.
고3이 되면 상황은 더 극단적으로 바뀝니다.
• 3월: 교육청 모의고사
• 5월: 교육청 모의고사
• 6월: 평가원 모의고사
• 7월: 교육청 모의고사
• 9월: 평가원 모의고사
• 10월: 교육청 모의고사
• 11월: 수능
고3에게 일 년은 ‘모의고사 또 모의고사 그리고 수능’의 반복일 뿐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학생들에게 묻습니다. “너의 진로는 무엇이니?”
이건 선택이 아니라 생존입니다. 그리고 그 생존 게임에서 탈락한 학생에게, 이 사회는 너무도 쉽게 말합니다. “마음이 약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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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세 여학생은 마음이 약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너무나 정상적으로 ‘대한민국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죽음을 예외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세월호를 겪고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도 학생들이 죽었고, 시간이 지나자 “그만 좀 하라”는 말들이 들려왔습니다.
이번에도 똑같이 반복될까요? 죽음은 다시 반복되는데, 구조는 왜 항상 그대로일까요?
학생이 죽으면 학교는 대응팀을 꾸리고, 교육청은 심리 상담을 배정하고, 언론은 기사를 내고, 사람들은 분노합니다. 그리고 또 묻힙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묻히지 않아야 합니다.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는 죽음 이후에 움직이는 나라가 아니라, 삶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사실 미래는 정말 예측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전에 우연히 유튜브에서 유가족 학부모님의 기자회견 영상을 보게 됐습니다. 그 영상을 보자마자 생각했습니다. “이건 브런치에 기록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이 글에 반응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이 사건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엔 생각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요. 하지만 곧 마음을 바꿨습니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리자. 이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우리 사회가 외면하지 않도록, 저는 이 이야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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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엔 절망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이죠.
하지만 곧 마음을 바꿨습니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리자. 여기는 움직이는 독자들이 있다.
이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우리 사회가 외면하지 않도록,
저는 저의 목소리를 쓰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어떤 감정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한동안 고민했습니다.
‘진짜 나’, ‘SNS’, ‘타인의식’, ‘공부의지’, ‘허세’ 같은 키워드들을 끄적여놨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구조 안에서 가장 많은 학생들이 처음으로 마주하는 감정이 ‘열등감’이라는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이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나머지 모든 키워드들도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첫 번째 키워드로 ‘열등감’을 선택한 이유는, 이 감정이 학생들의 잘못이 아니라 구조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일 비교 속에서 살아갑니다. 성적, 수행평가, 생기부, 외모, 말투까지—모두 경쟁이고, 줄 세움입니다. 그 속에서 느끼는 ‘나는 부족하다’는 감정은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문제는 그 열등감이 아니라, 그 감정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고, 끝없이 강화하는 학교 시스템과 사회 구조입니다.
그래서 저는 ‘열등감’이라는 감정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그 감정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고,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강요되는지를 드러내보려 합니다.
그런데 ‘열등감’이라는 단어 하나로는 부족했습니다.
이 감정은 너무 오래, 너무 많은 학생들에게 반복되어 왔고, 이제는 거의 시스템처럼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의 제목을 ‘열등감 구조’로 붙였습니다.
열등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감정을 당연하게 만들고 방치하는 구조를 직시하고 싶었습니다.
열등감의 구조에 대해서 여러 편의 글을 업로드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