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주의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교육현장르포 <열등감 구조-기본 편 2편>

by 조영철

### 열등감 구조 2편: 말이 우리를 가두는 방식 – 패배주의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넌 안 돼."

"이미 늦었어."

"그 대학은 아무나 가는 줄 알아?"


이런 말들을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말을 단순한 의견으로 듣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너무 자주, 너무 많은 곳에서 반복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절대적 진실처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말은 우리를 가두기 시작합니다. 이 글은 바로 그 "말"이 어떻게 열등감과 패배주의의 구조를 만드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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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은 구조다 – 그냥 듣고 흘릴 수 없는 이유


교실에서, 학원에서, 집에서, SNS에서 우리는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지금 성적으로는 안 돼”, “그 학교는 네가 갈 수 있는 데가 아니야”, “중학교 때부터 준비해야지”. 이런 말은 조언의 탈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가능성을 잘라내는 칼날처럼 작동합니다.


처음엔 믿지 않으려 해도, 모두가 같은 말을 하면 결국 믿게 됩니다. 마치 진실처럼 들리기 시작하죠. 이 말들은 단순한 의견이 아닙니다.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기준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장치입니다. 이 말들은 단순히 조언으로 기능하지 않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반복적으로, 지속적으로 학생들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규범적 기준으로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말합니다. “전교 꼴찌 하다가 수능 만점 받은 친구가 있던데, 저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했죠. “아휴, 순진하긴. 걔는 뭔가 특별한 게 있었겠지.”


이 말의 진짜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걔는 특별해. 넌 평범해. 넌 안 돼.


이 짧은 문장 안에 들어 있는 것은 패배주의입니다. 이 메시지는 단순한 현실 판단이 아니라, 기준 감각의 위축을 유도합니다. 즉, 스스로의 가능성을 점점 줄여가는 방향으로 우리를 몰아갑니다. 그리고 그 감각은 점점 일상화되어, 더 이상 질문조차 하지 않게 만듭니다.


그 누구도 직접적으로 "너는 실패할 거야"라고 말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주입되는 말들은 같은 효과를 냅니다. 그 구조 안에서 우리는 침묵하거나 자기 의심 속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말은 단순한 의사소통이 아니라, 운명을 고정하는 프레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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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패배주의는 열등감의 정착점이다


패배주의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누군가의 성공을 봤을 때,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대신, 먼저 선 긋고 물러섭니다.


* “쟤는 원래 공부머리가 있었을 거야.”

* “중학교 때 운동해서 체력이 받쳐준 거래.”

* “걔는 부모님이 도와줬겠지.”


표면적으로는 분석 같지만, 그 속에는 이런 괄호가 숨어 있습니다:


(나는 평범하니까 안 돼)


이것이 반복되면, 결국 우리는 가능성을 묻기조차 두려워하게 됩니다. 시도 자체를 비웃는 문화가 만들어지는 거죠. 댓글에는 이런 말이 달립니다:


* “지금 해봤자 어디 가겠냐.”

* “4수, 5수 그 이상 해도 메디컬 못 가.”

* “다시 태어나야지.”


이런 말들은 누군가에게는 농담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꺾는 결정타가 됩니다. 반복되는 말은 결국 구조가 됩니다. 이 구조는 우리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시도할 수 있는 상상력마저 억압합니다. 이처럼 열등감은 말로 시작되며, 말로 고착화됩니다.


더 심각한 건, 이러한 말에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그것을 구조가 아니라 '현실'이라고 느끼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이 굳어지고, 열등감은 하나의 신념이 되어버립니다. 이 신념은 더 이상 외부의 것이 아니라 내면화된 믿음으로 바뀌고, 결국 자신의 삶을 제한하는 가장 강력한 족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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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스템의 문제는 맞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물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 사회가, 입시 제도가, 경제 구조가 정말 많이 불공정하다는 것을요.


* 태어날 때부터 가진 게 다른 ‘수저’ 계급제도

* 상류층의 비리와 입시 특혜

* 점점 더 벌어지는 교육 격차와 기회의 불균형


이런 시스템에서 오는 **박탈감과 패배주의**는 정당합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건 무시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 세상이 빌어먹을 세상이라는 것”, 인정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사실을 알았을 때의 다음 태도입니다. 구조에 대한 분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구조 속에서도 내가 쥘 수 있는 선택지는 무엇일까?를 묻는 것입니다. 모든 게 불공평하다고 해서, 내가 나 자신을 포기할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구조의 50%는 인정해도, 나머지 50%의 가능성까지 지워서는 안 됩니다.


패배주의는 모든 가능성을 0으로 만드는 힘입니다. 현실은 불공정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우리는 스스로의 가능성까지 묻어버리게 됩니다. 열등감은 공부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삶 전체로 전이**됩니다.


* “나는 그림 잘 그리는 것 같아.” “그림으로 밥 벌어먹기 힘들어.”

* “웹툰 작가 해보고 싶어.” “네가 무슨.”

* “대학 못 갔는데, 뭐 해도 안 될 듯.”


어릴 때 심어진 말은 미래의 선택까지 가로막습니다. 열등감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기준 감각을 마비시키는 구조적인 힘입니다. 결국 말은,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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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공부는 공부일 뿐, 나의 가능성은 질문할 수 있다


공부는 중요합니다. 10대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부는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중요한 건, 공부를 통해 형성되는 삶의 태도와 가치관입니다.


입시 성적은 단지 하나의 지표일 뿐입니다. 문제는 그 점수에 나의 존재 전체를 걸어버리는 구조입니다. 그 구조는 끊임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 “넌 이 점수니까, 이 수준의 사람이야.”


이 말을 듣고 자란 우리는,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자신의 가능성을 지워버리는 태도를 익힙니다. 하지만 다시 묻고 싶습니다. 정말 우리는 지금, 그 기준이 전부라고 믿어야 할까요?


시험 점수는 상황과 환경에 따라 변하는 수치일 뿐입니다. 그 수치가 나의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내 가능성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 태도,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움직이는 무언가**입니다. 그래서 공부는 공부대로 하되, 그 안에서 나를 닫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적이라는 수치에만 집중하기보다, 그 수치 이면에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노력을 했는지,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기준 감각을 다시 세우는 시작입니다. 성적이 아닌 태도, 비교가 아닌 성장에 집중할 때 우리는 열등감의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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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준 감각을 다시 일으키기 위한 첫 질문


우리가 잃어버린 건 단순한 자신감이 아닙니다. 기준 감각입니다. 기준 감각은 ‘내가 나를 평가하는 기준’을 외부가 아닌 내 안에서 만들어가는 힘입니다.


> 나를 판단하는 기준은 누구의 것이었는가?

> 나는 언제 스스로를 믿어봤는가?


패배주의는 그 질문조차 하지 못하게 막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 벽을 깨는 첫 질문이 필요합니다:


* “나는 정말 해보고 싶은 게 뭘까?”

* “그걸 누가 결정했지?”

* “내 가능성은 누가 제한한 거지?”

* “내가 정한 기준은 정말 나의 삶에 어울리는가?”

* “그 기준은 지금도 유효한가, 아니면 바뀔 수 있는가?”


이 질문을 시작으로, 우리는 말로 짜인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말이 만든 열등감은, 말로 다시 깰 수 있습니다. 말은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회복의 시작점이 되기도 합니다.


작은 질문은 기준 감각을 되찾는 첫걸음입니다. 그 질문이 쌓일 때, 비로소 우리는 외부의 기준이 아닌, 자기 삶의 기준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자기 삶의 가능성을 믿는 태도는, 어떤 구조보다도 강한 회복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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