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가 이끌었던 첫 발걸음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소위 '명문'이라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낡은 복도와 삐걱이는 마룻바닥에도 자부심이 배어 있었고, 학생들의 눈빛에는 국내 유수의 대학 이름들이 별처럼 박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처럼 여겨졌고, 모든 시스템은 그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치밀하게 작동했습니다. 입시 실적은 학교의 명예이자 존재 이유였고, 학생들은 그 명예를 지켜낼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자원이 동등하게 대우받지는 못했습니다. 마치 잘 깎아놓은 연필심처럼 날카롭고 반짝이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모의고사 성적표가 나올 때마다 교무실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선생님들과 머리를 맞대는 아이들, 학교가 기획한 각종 경시대회와 프로그램을 독차지하며 생활기록부의 빈칸을 빼곡히 채워나가는 아이들. 그들은 학교라는 이름의 정원에서 특별 관리 받는 분재(盆栽)와도 같았습니다. 섬세한 가지치기와 충분한 거름을 받으며 모두가 선망하는 작품으로 빚어지고 있었죠.
저는 그 정원의 풍경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는 들풀에 가까웠습니다. 유능함과는 거리가 있었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일찌감치 길을 잃은 학생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크게 엇나가거나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거대한 시스템의 톱니바퀴 한쪽에서 그저 굴러갈 뿐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저를 '착하지만 공부는 좀…' 하는 눈빛으로 대했고, 저는 그 시선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 무뎌지는 법을 일찌감치 터득했습니다.
원래 다 이런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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