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비극, '정직한 스펙' 불신하는 청년들의 절박함

스펙에 대한 회의감, 청년을 위험으로 내몬다

by 에디

최근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국인 대학생 사망 사건은 '고수익 취업 사기'라는 키워드와 맞물려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단순히 해외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강력 범죄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이면에 우리 청년들이 처한 구조적인 절박함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왜 대한민국의 대학생들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검증되지 않은 해외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일까요? 이는 '스펙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스펙으로 미래가 있는가?'라는 깊은 회의감에서 시작되는 문제입니다.


‘이걸로 될까?’... 정직한 스펙의 가치를 불신하다


문제의 핵심은 '스펙 지상주의'의 역설에 있습니다. 과거에는 학점, 어학 성적, 자격증 등 소위 '정석 스펙'을 착실히 쌓으면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들은 다릅니다. 취업 절벽 앞에서, 피땀 흘려 쌓아 올린 스펙이 '고소득'이나 '안정적인 직장'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현실을 너무나도 명확히 목도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스펙으로 과연 고소득 직장을 가질 수 있을까?"


이 질문이야말로 청년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회의감의 실체입니다. 남들만큼, 아니 남들보다 더 노력해도 정규직 일자리는 바늘구멍이고, 어렵게 취업해도 치솟는 물가와 집값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이러한 현실 인식은 '정직한 노력'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정규 트랙을 벗어난 '지름길'이나 '한 방'을 찾게 만듭니다. '단기간 고수익'이라는 사기꾼들의 미끼는 바로 이 지점, 즉 성실함의 배신감을 파고듭니다.


이러한 불신은 단순히 미래의 불확실성에서만 기인하지 않습니다. 천정부지로 솟은 등록금과 생활비를 감당하며 ‘스펙 쌓기’에 내몰리는 학생들은 이미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상태입니다. 이들에게 ‘느리지만 정직한 길’은 사치일 수 있습니다. 당장의 학자금 대출 상환과 생계유지라는 현실적인 압박은 ‘단기간 고수익’이라는 유혹을 단순한 탐욕이 아닌, 절박한 생존의 동아줄로 여기게 만듭니다.


회의주의를 파고드는 유혹, 외면하는 대학


이러한 청년들의 심리적 취약성은 범죄 조직에게 완벽한 먹잇감이 됩니다. 그들은 '화려한 스펙'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펙 없어도 괜찮다", "누구나 단기간에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이는 정규 교육 시스템과 노동 시장에서 좌절을 경험한 청년들에게 기존의 룰을 파괴하는 매력적인 대안처럼 비칩니다.


물론,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고 그 결과에 1차적인 책임을 지는 것은 성인인 대학생 본인입니다. 누구도 그 선택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학이 이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대학은 연간 수천만 원에 달하는 막대한 등록금을 받으며, 그 대가로 '더 나은 사회 진출'을 암묵적으로 약속합니다.


'높은 취업률'과 '화려한 국제 프로그램'을 전면에 내세워 학생들을 모집하는 것 자체가 대학이 '취업 사관학교'로서의 기능을 자처하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이처럼 학생들의 미래와 경력을 대학의 핵심 '상품'이자 '성과'로 내세우는 기관이라면, 그 경력을 쌓는 과정에서 도사리는 명백한 위험(취업 사기, 부당 계약)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고 경고할 최소한의 사회적 책무(social responsibility)를 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는 단순한 '역할 부재'를 넘어, 대학이 자처한 기능에 대한 책임의 방기에 가깝습니다.


대학의 진로 지도가 현실과 철저히 괴리된 것도 문제입니다. 많은 대학의 취업지원센터는 여전히 '취업률'이라는 숫자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학생 지원은 이력서 첨삭이나 모의 면접처럼 '기업에 어떻게 잘 보일 것인가'라는 기술적 조언에만 편중되어 있습니다. 정작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처음 맞닥뜨릴 수 있는 현실적인 위협—예컨대, 교묘한 고수익 사기의 유형, 독소 조항이 담긴 근로계약서, 혹은 해외 취업 시의 법적 보호 장치—에 대한 '생존 교육'은 전무합니다.


이는 마치 운전 기술은 가르치되, 사고 대처법이나 도로 위의 위험(난폭 운전, 결빙)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학생들의 절박함과 불안감이라는 이 치명적인 공백을 범죄 조직이 파고드는 동안, 대학은 사실상 '안전 불감증'을 방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대학, 최소한의 ‘안전망’ 역할은 해야 한다


이 비극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개인의 신중함과 더불어, 대학의 근본적인 시각 교정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대학은 학생들의 '경제적 불안감'과 '미래에 대한 회의'를 직시해야 합니다. 이제 진로 지도는 단순히 이력서 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노동 시장의 현실, 정상적인 소득 구조, 그리고 '고수익 사기'를 판별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금융 및 법률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취업 사관학교를 자처하고 있는 여러 대학들이 학생들을 사회로 내보내기 전 갖춰야 할 최소한의 '안전장치'입니다.


이를 위해 대학 내의 학생 지원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소수의 대기업 합격자나 고시 합격자를 내세우는 '성공 신화' 전파는, 대다수 학생의 현실적인 불안감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기보다 오히려 억누르고 고립시킵니다. 이제는 학생들의 좌절과 회의감을 '나약함'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대학이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취업지원센터'와 '학생상담센터'를 물리적으로 분리 운영해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학생이 겪는 '취업 스트레스'는 이력서 스킬 부족에서 오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이 스펙으로 괜찮을까?"라는 '미래에 대한 회의감'이라는 심리적 문제와 깊게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학생의 진로 상담 과정에서 이들의 불안정한 심리를 즉각적으로 케어하고, 반대로 심리 상담이 막연한 위로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진로 탐색과 현실적 대안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두 기능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야 합니다. 학생의 심리적 방어기제를 이해하는 토대 위에서 현실적인 조언이 이루어지는 '통합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이것이 모든 해결책의 구체적인 출발점입니다.


이와 더불어, '정직한 노력'이 보상받을 수 있는 '검증된 경로'를 대학이 적극적으로 안내하고 연계해야 합니다. 정부 및 공신력 있는 기관과 연계하여, 학생들이 위험한 지름길을 택하지 않아도 성실한 노력을 통해 사회에 진출하고 경제적 자립을 이룰 수 있다는 신뢰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고소득'만이 유일한 성공이라는 왜곡된 사회적 인식을 바꿔나가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청년들이 자신의 스펙을 불신하며 위험한 도박에 내몰리지 않도록, 이제는 대학이 그들의 불안에 응답해야 할 때입니다.


에디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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