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반'으로 전락한 고교학점제, 약속의 배신

학생 맞춤형 교육은 어디로 갔나

by 에디

안녕하세요. 에디입니다.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의 첫해도 벌써 끝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학생 개개인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춰 스스로 시간표를 설계하는 '학생 맞춤형 교육'. 획일화된 교실을 무너뜨리고 창의적인 미래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장밋빛 청사진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간한 2025 이슈페이퍼는 이러한 기대와 정반대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보고서가 진단한 현장은 '심각한 본말전도'라는 한마디로 요약됩니다. 단순히 제도가 현장에 안착하지 못했다는 수준의 비판이 아닙니다. 그 이면에는 '대학 입시'라는 거대하고 단일한 목표가 학생들의 모든 미래 설계를 집어삼키는, 우리 교육의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학생의 진로와 적성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던 제도가 결국 또 다른 형태의 '수능 대비반'으로 전락하고 만 것일까요? 이는 학교 현장에 '열정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문제는 "내가 이 진로 과목을 선택해서, 과연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회의감에서 시작됩니다.


'이 과목으로 될까?'... 정직한 진로의 가치를 불신하다


문제의 핵심은 '입시 지상주의'가 만들어낸 뼈아픈 역설에 있습니다. 고교학점제가 본래 약속했던 것은 명확합니다. 학생이 자신의 진로에 맞춰 다양한 과목을 성실히 이수하면, 그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스펙이 되어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될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교실 안으로 가져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 현장은 다릅니다. 서울 주요 16개 대학에 강제된 '정시 40% 룰'이라는 강력하고 획일화된 입시 현실 앞에서, 학교가 피땀 흘려 개설한 진로 선택 과목이 '대입 실적'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현실을 너무나도 명확히 목도하고 있습니다. 수시 이월 인원까지 포함하면 실질 정시 비중이 5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과정'보다 '결과', 즉 수능 점수가 모든 것을 압도합니다. "내가 이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 과연 내신과 수능에 유리할까?" 이 질문이야말로 학생, 학부모, 그리고 학교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회의감의 실체입니다.


평가원의 보고서가 제시한 숫자는 이 현실을 처참하게 증명합니다.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할 이 제도 안에서, 국어·수학·영어 등 수능 주요 교과의 선택 과목 중 최대 80%가 학생 '선택'이 아닌 '학교 지정' 과목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수학의 '대수'는 80.88%, 국어의 '문학'은 79.41%, 영어의 '영어 1'은 79.41%의 학교에서 학생 선택과 무관하게 필수 이수 과목으로 지정했습니다.


반면, 수능 미출제 과목, 즉 학생들의 진로와 적성을 위한 과목이었던 '영어 독해와 작문'의 지정 비율은 44.11%에 불과했습니다. 연구진은 "수능 출제 과목은 학교 지정 과목으로 고정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학생 중심'이라는 제도의 근본 취지가 '입시 중심'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 무너진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느리지만 정직한 진로 탐색'은 사치일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의 대입 실적과 내신 등급이라는 현실적인 압박은 '수능 출제 과목' 집중 이수를 단순한 편의주의가 아닌, 절박한 '생존의 동아줄'로 여기게 만듭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의 다양한 꿈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수능 필수 패키지'를 제공하는 또 다른 입시 학원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격차를 파고드는 불평등, 인프라를 외면한 정책 당국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수능 대비반'으로 변질된 고교학점제의 혜택마저도 모든 학생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 교육의 구조적 문제는 '불평등'이라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듭니다.


교·강사 수급 등 인프라가 확보된 대도시와 대규모 학교는 그나마 '수능 대비'와 '진로 탐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농어촌이나 중소도시의 소규모 학교 학생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진로 과목은커녕, 수능에 필요한 과목조차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는 이중고에 시달립니다.


물론, 이 제도의 실패를 전적으로 학교 현장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육 당국이 이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학생 맞춤형 교육'이라는 화려한 구호를 전면에 내세워 제도를 시행했다면, 그 대가로 국민적 신뢰와 막대한 예산을 받았다면, 그 제도가 최소한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보장할 사회적 책무를 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실제 조사에서 대도시 학교의 학생 선택 과목 비율은 47.6%로 가장 높았지만, 중소도시는 41.0%, 읍면지역은 41.1%로 낮았습니다. 대도시와 그 외 지역 간에 평균 6.6%p라는 현격한 격차가 발생한 것입니다. 학교가 제공하는 평균 과목 수로 보면 이 격차는 더욱 벌어집니다. 대도시는 평균 70.23개의 과목이 개설된 반면, 읍면지역은 60.25개에 그쳤습니다. 대도시와 읍면지역 간 과목 수가 평균 10개나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역할 부재'를 넘어, 정책 당국이 자처한 기능에 대한 '책임의 방기'에 가깝습니다. 이는 마치 운전 기술은 가르치되, 지방 학생들에게는 제대로 된 도로와 자동차를 제공하지 않은 채 거친 길로 내모는 것과 같습니다. 학생들의 진로 선택권 격차라는 이 치명적인 공백을 '수능'이라는 입시 제도가 파고드는 동안, 정책 당국은 사실상 '교육 불평등'을 방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제도의 칸막이를 넘어, '교육과정-대입' 통합 시스템으로


무엇보다 정책 당국은 학교 현장과 학생들의 '진로 불안감', 그리고 '입시 현실에 대한 회의'를 직시해야 합니다. 이제 고교학점제는 단순히 '다양한 과목 개설'을 독려하는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제도가 입시 준비의 또 다른 형태로 굳어지지 않도록, '수능-교육과정 연계성 재검토' 등 대입 제도와의 구조적 조정을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학생들을 사회로 내보내기 전 갖춰야 할 최소한의 '안전장치'입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교육과정 담당 부서'와 '대입 제도 담당 부서'를 물리적으로 분리 운영해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학생이 겪는 진로 선택 스트레스는 들을 과목이 없다는 기술적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 과목이 과연 대입에 도움이 될까?"라는 입시 현실과 깊게 얽혀있는 실존적 문제입니다.


따라서 고교학점제 설계 과정에서 대입 제도의 막대한 영향력을 즉각적으로 반영하고, 반대로 대입 제도가 고교 교육과정을 왜곡하지 않도록 두 기능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야 합니다. 학교가 왜 '수능 과목'을 지정 편성할 수밖에 없는지, 그들의 '절박함'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교육과정-대입 통합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이것이 모든 해결책의 구체적인 출발점입니다. 이와 더불어, 정직한 노력이 보상받을 수 있는 검증된 경로를 정책이 직접 안내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역별 격차 해소를 위해 농어촌 지역 교원 수급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과 실효성 있는 온라인 공동 교육과정을 구축하여, 학생들이 태어난 지역 때문에 자신의 진로를 포기하지 않도록 신뢰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수능 점수만이 유일한 성공이라는 왜곡된 사회적 인식을 바꿔나가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 선택을 불신하며 '수능반'이라는 획일적인 경로로 내몰리지 않도록, 이제는 정책 당국이 그들의 불안에 구체적으로 응답해야 할 때입니다.


에디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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