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김천 갈항사지에서 발견된 동서의 3층 석탑은 일제강점기였던 1916년 경복궁으로 옮겨졌고 계속 서울에 남아있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서 감상이 가능하다. 김천 갈항사지 동서3층 석탑은 통일신라 하대였던 8세기 신라 38대 임금 원성왕의 어미니, 원성왕의 이모와 외삼촌 3명이 발원하여 제작하였다. 제작시기와 발원자의 이름이 석탑에 명문되어 있어 확인이 가능하다.
신라 하대는 신라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무너지고 있었을 때였지만 하대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8세기는 나름 문화적 완숙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7세기 3층 석탑이라는 양식과 철저한 비례미 계산에 통달한 신라인들은 8세기까지 그 실력을 유지했고 이 때문에 8세기에 제작된 석탑들 모두 비례적으로 이상적인 구도에 맞춰 제작되었다. 신라인들은 7세기에 석가탑과 다보탑을 만들어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나! 신라 하대 석탑들이 대개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은 그들은 '고전(Classic)'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상적 비례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갈항사지 동서 3층 석탑은 2단의 기단부에 3층의 탑신부 그리고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상륜부는 소실되었고 서탑은 2층 옥개석과 3층 탑신까지만 남아있고 그 위로는 절단되어있다시피 하다. 두 탑 모두 2단의 기단부가 크고 넓직하면서 두꺼워 우람한 인상을 준다. 탑신부에는 두 탑 모두 동일한 패턴으로 뚫린 구멍을 확인할 수가 있다. 이 구멍들은 탑에 불상이나 불교의 소도구들을 껴넣어 장식했던 모습의 흔적들이다. 탑에 작은 불상들로 꾸미는 기법을 장엄 기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