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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May 04. 2020

[국보 100호] 개성 남계원지 7층 석탑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의 야외전시장에 놓여 있는 국보 100호 개성 남계원지 7층 석탑은 본래 개성시 덕암동의 남계원 터에 있던 석탑으로 일제강점기 1915년 서울의 경복궁으로 옮겨졌다. 정확한 제작시기를 알 수 없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보수공사를 거듭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기단부는 2단으로 배치되어 있어 높은 편이고 7개의 옥개석은 그 끝이 전부 위로 치켜올라가 있으며 다소 두툼하다. 탑신부의 면적과 높이는 좁게 편성되어 있어 옥개석과 옥개석 사이의 배열이 촘촘하다. 이때문에 한층 더 수직적이면서 날렵한 인상을 준다. 모서리기둥은 흐릿하게 나마 조형되어 있는데 이는 고려시대 초기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이기도 하다. 이로 말미암아 고려 전기에 석탑이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고려'라는 국가는 지방호족들의 연합체적인 성격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각 지방별로 지방특색이 매우 강력하게 나타났다. 재력과 정치력까지 갖추게 된 호족들은 (물론 호족들별로 힘의 차이는 천차만별이었지만)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개성있게 표현하려고 했다. 고려 전반기에는 지역특색을 반영해 독특하고 개성넘치는 석탑, 불상 등이 만들어졌다. 개성 남계원지 7층 석탑은 이중 개성의 지역적 특색을 반영한 석탑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다.


개성에 있던 남계원지 7층 석탑을 1915년 경복궁으로 옮겨오던 와중 탑신부에서 <묘법연화경>이라는 사경이 발견되었다. 사경이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적어놓은 문서를 일컫는다. 남계원지 7층 석탑에서 발견된 <묘법연화경>은 7축짜리였으며 1283년(충렬왕 9년)에 봉안했다는 내용의 글이 있다. 고려 전반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이 석탑에서 고려 후기의 사경이 나왔다는 것은 몇 차례 석탑의 수정작업이 진행되었다는 뜻이다. 개성 남계원지 7층 석탑은 지역적, 시대적 특징들을 모두 담고 있는 석탑인 것이다. 


사진출처: 국가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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