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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Jan 07. 2020

[국보 9호] 정림사지 5층 석탑, 비운의 백제

   백제를 상징하는 단 하나의 탑은 역시 부여에 있는 정림사지 5층 석탑일 것이다. 삼국시대는 흔적을 전부 회복하기에는 지금으로부터 너무 오래 전이고, 건축들도 대부분이 목조건축있던지라 삼국시대의 많은 유적지들이 폐허로 남아 있다. 신라의 경우 삼국을 통일하면서 천 년이 이어졌고 그 긴 세월 동안 천도도 하지 않고 한 도시만을 수도로 삼았으니 그나마 많은 것들이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에 있는 고구려의 유적은 말할 것도 없이 부족하고 남한에 있는 백제의 경우도 유적이 많이 남아 있질 않다. 돌로 만든 석조 문화재들만이 겨우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제의 문화재 하나하나가 귀중하고 그 중에서도 국보 9호로 지정된 정림사지 5층 석탑은 백제의 얼굴이고 우리가 백제를 회상하게 해주는 상징적 매개체이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이 있는 '부여'의 옛 이름은 '사비' 이며 사비성은 백제의 마지막 수도이다. 따라서 정림사지 5층 석탑은 백제 말기 석탑 양식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은 개인적으로 미스테리한 석탑이라고 생각한다. 얼핏 보기엔 특별할 것 없는 석탑이지만 가까이서 차근 보면 압도되는 느낌이다. 구구절절한 설명보다는 일단 거장 미술평론가들의 평문을 소개하겠다.



완만한 체감률과 높직한 1층 탑신부는 우리에게 준수한 자태를 탐미케 하며 부드러운 마감새는 그 고운 인상을 말하게 하는 것이다. 훤칠한 키에 늘씬한 몸매 그러나 단정한 몸가짐에 어딘지 지적인 분위기, 절대로 완력이나 난폭한 언행을 할 리 없는 착한 품성과 어진 눈빛, 조용한 걸음걸이에 따뜻한 눈인사를 보낼 것 같은 그런 인상의 석탑이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외용의 미는 소재 정리의 규율성과 더불어 율동의 미를 나타내고 각층의 수축성과 더불어 아주 운문적인 미를 갖고 있다. 소재조합의 정제미뿐만 아니라 소재 자체의 세련미도 갖고 있어서 소재 자체의 세련미도 갖고 있어서 온갖 능각이 삭제되어 매우 온화한 평탄면을 갖고 있다. 더욱이 지붕돌은 낙수면의 경사가 거의 완만하여 수평으로 뻗다가 전체 길이 10분의 1 되는 곳에서 약간의 반전을 나타내어 강력한 장력을 보이고 있다. 또 각 지붕돌 끝을 연결하는 이등변삼각형의 사선은 약 81도를 이루어 일본 법륭사 오층석탑과 거의 같다. 곧 안정도의 미를 볼 수 있다.    -고유섭, <조선 탑파의 연구>



   정림사지 5층 석탑의 빼어남은 공학적으로 우선 설명이 가능하다. 탑의 매무새를 이야기할 때 여러 가지가 고려되지만 그 중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탑신이 위로 갈수록 어떤 비율로 축소되는가이다. 전문용어로 체감률이라고 하는데, 앞서 보았던 국보 6호의 중앙탑은 체감률이 상당히 극단적이라고 볼 수 있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의 경우 한 층이 올라갈 때마다 정확하게 10분의 1의 비율로 체감된다. 그러니 사람의 눈에는 정림사지 5층 석탑은 안정감 있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토록 완벽한 탓일까. 정림사지 5층 석탑엔 씻을 수 없는 굴욕이 새겨져 있다. 백제가 멸망하고 중국의 당나라 군대가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점령했을 때 당시 당나라 사령관이었던 소정방은 정림사지 5층 석탑에 "백제를 멸망시킨 업적과 그것을 기념한다'는 글을 새겨넣었다. 어쩌면 승자에게 주어지는 전리품이고 패자가 짊어져야 할 치욕이긴 하지만 역사의 판정은 지독하게 냉정하고 가혹한 면이 있는 듯 하다. 그렇지만 그 때문에 정림사지 5층 석탑은 비운의 백제 말기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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