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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Sep 16. 2020

[국보 113호] 청자 철화양류문 통형 병

완성도가 너무 빼어난 나머지 감히 쉽게 만지거나 다가가기 힘든, 그저 바라만 봐야 할 것 같은 예술작품들이 있다. 그런 예술작품들을 묘사하는 형용사들 또한 참 많다.  집착과 정념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영혼의 순정성이 묻어나는 작품에 대해서 나는 '고고하다'고 표현한다. 품위와 자태가 아름다워 보는 이의 혼을 쏙 빼놓은 작품에 대해서 나는 '고상하다'고 표현한다. 맑고 깨끗하여 어떨 때는 경외스러울 정도로 보이는 작품에 대해서 나는 '고결하다'고 표현한다. 완벽주의적인 면모에 흠집 하나 없어 우러러 보게 되는 작품에 대해서 나는 '고매하다'고 표현한다. 국보 113호인 '청자 철화양류문 통형 병'에 그려져 있는 한 그루 버드나무에 대해선 이 형용사들 중 '고고하다'는 묘사가 가장 적절한 듯하다.


이 병에 버드나무 그림말고는 없다. 어떻게 보면 공간활용도가 어설프다고 생각될 수 있겠지만 덕분에 이 버드나무는 고고할 수 있다. 위로 뻗은 줄기와 다시 아래로 흐르는 잎의 상승-하강 구도는 이상적인 대조의 짝을 이룬다. 투박하게 그어진 줄기의 먹은 믿음직스러워보이면서 유려하게 흐르고 있는 잎의 먹은 부드럽고 우아하다. 농도의 차도 별로 없는 이 버드나무 그림은 단순하기 그지없지만 가장 기본에 충실할 때 더 고고한 그림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사진출처: 국가문화유산포털


이 청자 철화양류문 통형 병이 고고한 인상을 주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고 친숙한 느낌을 주는 건 이것이 과연 청자가 맞나 의심이 들만큼 색이 구수하기 때문일 것이다. 유약을 특수한 재질을 사용하여 산화되면서 갈색을 띠었다고 한다. 분명 청자 특유의 귀족적이고 명징한 색채를 발하고 있진 않지만 살포시 얹어놓은 버드나무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 병의 몸통 역시 높이 31cm의 수직적인 통형이라 더욱 고고해보이지만서도 어깨에서부터 기계적으로 반듯한 직선이 아닌 어설픈 직선으로 내려오는 덕에 이 통형은 안온한 느낌마저 준다.


이것이 한국미술이다. 품위를 지키면서도 거드름 피우지 않는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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