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이 조사당의 존재를 가볍게 여기거나 그냥 지나칠 수가 있다. 조사당은 무량수전을 지나 부석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사당으로 가는 길이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다. 규모도 큰 절이지만 조사당과 가는 길만큼은 종교적 겸손함과 경건함을 꾀한 듯하다.
조사당이란 사찰을 만든 창건주나 사찰의 종교 종파와 관련된 인물을 모시는 사당이다. 부석사는 신라 중대 의상대사가 창건했으니 부석사 조사당은 의상대사를 위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부석사 조사당은 맞배지붕에 주심포 양식을 취하고 있는 전형적인 고려 초기 목조건축물이다. 어떤 부분도 드러내놓는 곳이 없고 전체적인 조화로운 비례에 따라 모든 요소들이 균형을 맞추어 건축이란 최종적으로는 종합미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다. 흰색이 지배적인 가운데 황색을 곁드는 색채배합도 건물을 한층 호젓하게 해준다.
그러나 조사당엔 옥에 티가 있다. 조사당은 찾는 누구나 조사당을 관람할 때 거슬리는 한 가지. 바로 철창이다. 조사당에는 아주 재미있는 전설이 내려온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자신의 지팡이를 조사당 앞에 꽂자 그 자리에서 나무가 났다는데 소문에 의하면 이 나무의 나뭇잎을 따서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자 하도 많은 사람들이 나뭇잎을 따갔다고 한다. 그래서 나무가 죽을 지경에 이르자 관리 차원에서 나무를 철창으로 가두어버렸다. 취지는 알겠으나 이렇게 조사당 건물과의 어울림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식의 주먹구식 방식은 문화재와 건축물, 그리고 예술에 대한 문외한적 태도는 물론 일말의 배려도 없는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조사당 안에는 그 유명한 조사당 벽화가 있다. 조사당 벽화에는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 제석천, 우주의 창조신 범천, 사천왕, 보살 등의 불화가 있고 하나같이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불화들이다. 그러나 조사당에서 보는 불화들은 복원된 경우며 진품은 부석사에서 따로 떼내어 관리 중이다. 참고로 이 불화들은 국보 46호이니 따로 글을 쓰는 기회도 있을 것이다.
이것으로 부석사 시리즈는 끝이다. 부석사에는 5점의 국보가 있지만 5점의 국보가 아니더라도 내 눈과 머리와 가슴을 즐겁게 해주는 걸작들이 무수히 많다. 부석사는 보물창고나 다름 없고, 이 걸작들이 다 자기가 잘났다는 양 나서질 않고 전체가 부석사라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종교적 신앙심이 목조건축에 짙은 향기를 새기는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한 곳이 부석사이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