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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Jan 15. 2020

[국보 20호] 불국사 다보탑, 불국사 시리즈①

   앞서 부석사를 국보의 창고라고 했는데, 도시 전체가 보물 창고인 곳이 있다. 바로 경주다. 비록 지금은 부여와 공주, 그리고 앞으로도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에 지정되는 일이 더 일어났고 더 일어나길 바라지만 한때 경주는 유일하게 대한민국에서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에서 지정된 곳이었다. 우리나라 도시들 중 한 국가의 수도였던 곳들이 많긴 하지만 끊어짐 없이 무려 천 년이나 수도 역할을 해왔던 경주는 정말 값진 곳이다. 국보는 물론 값어치를 감히 환산할 수 없는 유산들이 곳곳에 깔려 있다. 경주를 제대로 여행하려면 최소 일주일은 필요할 것이다. 


   굳이 경주 내 문화재들을 등급화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경주의 꽃은 불국사가 아닌가 싶다. 불국사에만 또 많은 국보들이 빛을 내주고 있다. 그 국보들 중 가장 앞자리에 있는 것은 국보 20호의 불국사 다보탑이다. 조금만 신경을 기울여보면 '다보탑'이라는 명명법이 이색적이라고 느낄 것이다. 원래 탑이라고 하면 앞에 사찰 이름이 붙고 층수가 붙고 탑의 재질이 붙는다. '정림사지 5층 석탑' 이나 '황룡사지 9층 목탑' 처럼 말이다. 그러나 불국사 다보탑은 사찰 이름만 붙을 뿐 층이나 '석탑'임에도 명칭이 붙지 않는다. 또 한 가지 의문점은 10원짜리 동전엔 석가탑이 아니라 다보탑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우선 다보탑은 층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보탑은 기존 주류의 방식에서 다소 벗어난 양식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다보탑의 형식은 대한민국 그 어떤 탑에서도 비슷한 유형을 찾아볼 수가 없는 대단히 독특하고 이질적인 양식을 취하고 있다. 불국사와 석가탑, 다보탑이 만들어졌던 건 신라 8세기 경 경덕왕 대였다. 경덕왕 대는 통일 이후 누적되어온 신라의 미술문화가 가장 정점을 찍고는 고전을 이룩한 시기였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문화적으로 찬란했던 최초의 시대였다. 불국사, 석굴암, 성덕대왕 신종 등 우리가 신라의 문화재들 중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하는 대부분이 경덕왕 치세에 만들어졌다. 고전을 이룩했다 함은 미술문화양식이 여러 시행착오를 겪다가 비로소 하나의 완전한 양식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미술문화계에 완벽함이란 없다. 때로는 완벽하다고 느꼈던 양식에서 살짝 비트는 무언가가 나타나야 문화생태계가 원활한 순환을 하며 발전하는 법이다. 완전한 고전양식이 정착했던 작품들과 그 고전양식에서 벗어나려 했던 시도들이 공존했던 시대가 경덕왕 대이기도 하다. 불국사의 석가탑이 고전 FM 원칙에 따른 전형미의 사례라면 다보탑은 고전양식에서 살짝 비틀어 파격을 시도한 사례의 쌍두마차라고 할 수 있다.


   다보탑의 기단부부터 뜯어 살펴보면 사각형 각 면에 계단이 있는 것이 가장 눈에 띠며 계단 입구에는 마치 당간지주 같은 두 개의 기둥들이 놓여 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4개의 건장하고 튼실한 석기둥 가운데에 사각 석주가 보호받고 있다. 이렇게까지가 다보탑의 기단부이다. 기단부 위 탑의 몸통은 8각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주변으로 난간이 둘러져 있다. 탑 몸통 부분은 부담스럽지 않은 가운데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상륜부는 원형이니 다보탑에는 4각, 8각, 원형의 구조가 공존하고 있다. 이런 다각 형태의 공존, 계단, 난간 등을 보면 다보탑은 탑이라기보다는 불교식 건축물을 보는 느낌이다. 다보탑이 이형미를 취하고 있음에도 완벽해 보이는 이유는 4각의 기단부, 8각의 탑신, 원형의 상륜부 그리고 디테일들이 다 따로 놀지 않고 완벽한 수리적 비례에 입각해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



  미인박명이라고 했던가. 다보탑은 다른 걸작 문화재들처럼 수난의 역사를 갖고 있다. 우선 다보탑의 멋을 한껏 더 살려주는 조각상이 있다. 탑 기단부에 있는 사자상이다. 사자상 하나가 무슨 멋을 살려줄 수 있나 싶겠지만 원래는 사자상이 4면에 모두 있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일제강점기 당시 3점이 도둑맞아 지금은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다. 도둑 맞은 3점 중 하나는 영국의 대영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아울러 일제강점기였던 1924년 총독부에서 대대적인 불국사 공사에 나섰고 이때 다보탑 역시 개수공사의 대상이었다. 문제는 당시 진행되었던 공사에 대해 보고서를 일절 남아있지 않다. 당시 공사 현장에 대해 간략하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문서들만 단편적으로 전해지는데 이중에는 다보탑 해체작업 중 불상 2개가 나왔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불상 2개가 어떤 불상들이었는지 현재는 어디에 있는지조차 오리무중이다.


 

일제강점기 당시의 다보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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