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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Jan 20. 2020

[국보 22호] 연화교와 칠보교, 불국사 시리즈③

   통일신라가 문화적으로 최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건설되었던 불국사. 불국사는 특히 정교한 기교미가 탁월하다. 인력으로 낼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아름다움이 담겨져 있다. 불국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전체적으로 조감해도 그 멋에 반할 수 있고, 세세함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도 더 큰 감동을 주기 때문에 가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재라고 할 수 있고 서양에서는 일찌감치 불국사의 우수성에 대해 찬탄해왔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 학자 요네다 미요지는 불국사 답사 후 불국사에 대한 수치적 비례와 도면을 자신의 논문에 실어 발표했다. 요네다 미요지는 불국사가 인간의 눈에 가장 편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수리적 비례에 철저하게 입각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종교적 상징은 물론 절묘한 균제미로 불국사를 찾는 누구나 정확한 수치를 알지 못해도 자연스레 불국사를 아름답게 여기게 되는 것이다. 요네다 미요지는 석굴암의 수리적 비례에 대해서도 철저한 연구 뒤 논문을 발표한다.



   경덕왕이 지금의 국무총리급에 해당하던 김대문에 불국사 창건을 지시할 때 극락왕생을 재현할 것을 요구했다. 이름부터 건축 취지를 함의하고 있는 불국사는 사람들에게 '죽어서 가게 될 불국토는 이렇게 생겼다'는 것을 건축적으로 현현시킨 사찰이다. 완전한 불교국가였던 신라에서는 조선과는 다르게 시내 곳곳에서도 평지사찰이 상당히 많았다. 통일 이후 신라는 점차 산속에 사찰을 건설하는 산지사찰을 창건하게 되는데 불국사는 토함산 비탈섶 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불국사 창건 당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불국사의 앉은자리가 좋은 터인지는 몰라도 산자락의 비탈이기 때문에 지반이 기울어져 있다는 점이다. 김대문이 생각해낸 묘안은 기울어진 경사만큼 석축을 쌓아올려 수평의 평지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쌓아올린 석축이 불국사를 들어가는 두 개의 계단 겸 문이 된다. 서쪽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올라가야 하는 석축의 다리를 연화교와 칠보교, 동쪽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올라가야 하는 석축의 다리를 청운교와 백운교라고 한다. 연화교와 칠보교, 청운교와 백운교는 각각 국보 22호와 23호에 해당한다.


돌계단 석축 연화교와 칠보교(사진출처: 출사코리아)


  청운교와 백운교, 연화교와 칠보교를 통해 들어가는 불국사의 동서공간은 각기 다른 세계를 상징한다. 청운교와 백운교를 올라가 자하문을 지나면 석가모니의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따라서 현세의 부처 석가모니를 모시는 대웅전이 있고 그 앞으로는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다. 연화교와 칠보교를 올라가 안양문을 지나면 이번엔 극락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여래의 세계가 있다. 따라서 이곳엔 아미타여래를 모시는 극락전이 위치해 있다.  물론 대웅전과 극락전 사이에는 돌계단이 있어 서로의 세계를 이어주고 있다.


창건 당시 불국사 상상도


  연화교와 칠보교, 청운교와 백운교의 이름 하나하나 함의하고 있는 뜻이 다 다르다. 우선 연화교의 '연화'는 불교의 교화라고 할 수 있는 연꽃을 상징한다. 실제로 연화교 계단은 연꽃모양으로 조각되어 있다. 칠보교의 '칠보'는 아미타경에 나오는 7가지 보물을 의미한다. 7개의 계단으로 구성된 칠보교는 각 계단마다 이 7가지 보물들을 상징적으로 새겨넣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마모되어 쉽게 확인할 수는 없다.


연화교와 칠보교(아래가 연화교 위에가 칠보교이다.)
연화교 연꽃무늬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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