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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Feb 01. 2020

[국보 32호] 팔만대장경, 걸작을 걸작답게  

    팔만대장경의 명칭은 꽤 다양하다. 팔만대장경이 처음 만들어졌을 땐 재조대장경이 원래 명칭이었고 지금은 합천 해인사에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합천 해인사 장경판이 문화재에 등록된 정식 명칭이기도 하다. '팔만대장경'이란 이름은 분량이 8만 장이 넘기 때문에 생겨난 별칭으로 사실 별칭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때 대장경이라 함은 단순한 불교 경전이 아니라  '경장(부처의 말씀)+율장(지침서, 규정서)+논장(율장을 논함)'으로 이루어진 삼장 구조로 부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불교계의 백과사전과도 같은 대경전이다. 이 때문에 대장경을 만들기 위해선 불교 교리에 대한 고도의 이해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며, 대장경을 만드는 사업은 웬만한 국가의 거대한 토목공사에 버금가는 인력과 물자가 소모되기도 한다. 


   대장경은 고려시대 8대 임금이었던 현종 치세에 거란족의 침입을 무찌르자는 염원에서 최초로 제작되었다. 무려 70여 년이 걸려 1087년에 완성된 이 최초의 대장경을 초조대장경이라고 부른다. 초조대장경 제작 후 얼마 안 있어 왕실 출신의 승려 의천대사는 초조대장경의 내용을 보완하겠다며 1091년 교장도감을 설치한하고는 중국의 대장경에 대한 주석서와 신라인들의 불교경전까지 싹 다 모아 10여 년만에 속장경을 편찬해냈다. 문제는 13세기 몽골족들이 한반도로 침입해오면서 초조대장경과 속장경이 모두 소실되어버렸다.


   철저한 불교국가에서 고려인들은 대장경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고 대장경에 대한 소실은 고려인들에게 치명적이기도 했다. 몽골족과의 전쟁이 한참 진행되던 중 소실된 대장경을 다시 만들자는 여론이 대두되었고 당시 국왕이었던 고려 고종과 무신정권의 비선실세 최우의 승락으로 1236년부터 1251년까지 16년에 걸쳐 대장경을 재편찬해냈다. 이렇게 재탄생한 대장경이 국보 32호에 해당하는 재조대장경이고  속칭 팔만대장경이라고 불린다.  팔만대장경의 제작은 당시 고려의 수도였던 강화도에서 진행되었고 완성도 강화도에서 완성되었다. 완성이 되고는 강화도 선원사에서 보관하다가 고려의 개경 환도 이후에는 양주, 등지 등을 거치다가 조선시대에 와서야 지금의 합천 해인사로 옮겨졌다.


사진출처: 중앙일보


   팔만대장경의 압도적인 양에 대해서 우선 수치적으로 과시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팔만대장경은 이름대로 8만 장이 넘으며 6700여 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글자 수만 무려 5279만 여자이다. 하루에 한 권씩 읽으면 팔만대장경을 완독하는데 30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팔만대장경이 전세계적인 대장경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분량 때문이 아닌 그 정밀함 때문이다. 5200만 여 자 되는 글자 수 속에 오타자가 거의 없으며 오탈자율은 0.0003%라고 한다. 단순 오탈자가 아니더라도 서체 자체가 구양순체라는 하나의 서체로 일관되고 있는데 그 많은 글자 수를 동일한 서체로 유지하며 판각했다는 사실에 그저 놀랄 뿐이다. 팔만대장경은 한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집단의 힘으로 제작되었다. 한 사람이 제작한 경우라면 그 사람의 능력에 대해 감탄하며 한 사람의 공으로 돌아가겠지만 그 많은 인력들이 완벽에 가까운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 엄청난 정신력과 집중력을 보였다는 건 고려인의 집요함인지 한국인의 집요함인지 어찌됐든 내 핏속에 그 끈기 있는 유전자가 흐른다는 사실에 괜히 뿌듯하다. 


사진출처: 시사저널


   팔만대장경과 더불어 과학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미학적으로 지금의 기술로도 복원할 수 없는 걸작들이 숱하게 존재한다. 시대 차가 얼마나 많이 나며 과학기술이 얼마나 우수하게 발전해왔는데도 그 몇 천 년전, 몇 백 년전 기술을 재현하는게 불가능하다는 건 인류사의 아이러니로 보이지만 마냥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팔만대장경의 예에서 보이듯 이 정도 완벽한 걸작의 탄생에 투입되는 가장 중요한 재료 혹은 기술은 정성이다. 우리는 불교 교리에 대한 정성 면에서 고려인들을 따라갈 수가 없다. 예술은 결코 노하우나 축적된 기술로 완성될 수는 없다. 창작자의 의도, 태도, 정성 등 눈에 보이지 않은 가치들이 예술을 예술답게 만들어준다.


  참고로 팔만대장경은 국보 32호,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은 국보 52호에 해당하며 팔만대장경은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해인사 장경판전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사진출처: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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