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의 화엄사는 여러모로 연구대상일 정도로 디테일한 면에서 전체적인 면까지 범상치 않다. 이미 한 번 언급한 바 있는 국보 12호의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등이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국보 35호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 역시 석탑 양식에 있어서 다보탑과 더불어 대표적인 이형탑의 쌍두마차로 불리고 있다. 물론 파격미에선 다보탑이 앞서지만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감상의 편안함을 주는 건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이다.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의 첫인상은 '익살스럽다'였다. 종교적 엄숙미보다는 옆에 지켜보고 싶게 만들고 아무리 봐도 질릴 거 같지 않은 종교적 포근함이랄까. 이 탑에 가장 눈길이 가는 건 보통 석탑들과는 달리 기단부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악기와 꽃을 받치고 연주하거나 춤추는 천인상들이 조각되어 있다. 위층 기단에는 암수 네 마리의 사자가 석탑의 모퉁이를 떠받치고 있으며 그 사이 스님상이 합장하고 있다. 마치 그리스 에레크테이온 신전의 여신기둥상을 연상케하는 이 5개의 기둥상은 탑이 아니라 종교적 책임, 불국토의 수호, 중생구제의 무게게, 열반으로 가는 수련의 고행 등을 짊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결코 안쓰럽지 않고 당찬 사자상의 꼿꼿한 자세와 스님상의 처연한 모습은 그들은 모든 걸 감당해내리란 확신을 만들어준다.
탑신부는 이형적으로 기단부보다 높이가 짧은데 1층 몸돌에는 인왕상 사천왕상, 보살상들을 조각해 심심함을 피하고 있으며 옥개석의 끝부분을 앙증맞게 살짝 치켜세워두었다. 아래에서 지나치게 화려함을 장식했다는 의식 탓일까 상륜부는 별다른 꾸밈없이 소박하게 머리장식 받침돌로 마무리 했다. 이것이 한국 석탑의 미이고, 한국 미술의 미이다. 꾸밀 줄 알고 장식할 줄 알고 있으나 지나치지 않은 것. 화려함에 멈춤을 알고 욕심 부리지 않으며 미술을 갈무리하는 것.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이 주는 익살스러움이나 편안함은 어쩌면 석탑을 통해 본 우리 민족과 조상의 익살스러움이나 편안함이 아니었나 모르겠다.
화엄사 4사자상 3층 석탑은 통일신라 중엽 8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화엄사 내부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