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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Feb 14. 2020

[국보 43호] 송광사 혜심고신제서, 대선사 임명장

   혜심고신제서는 고려 23대 왕이었던 고종이 재위 3년째가 되던 1216년 진각국사 혜심에게 대선사의 호를 하사한다는 문서다. 고려시대 국왕이 승려에게 작위를 하사하는 문서를 '제서'라고 하는데 남아있는 제서가 몇 점 없기 때문에 혜심고신제서는 불교계는 물론 문화재 중에서도 희귀한 보물로 여겨지고 있다. 가로 3.6m, 세로가 33cm로 홍색, 황색, 백색 등의 비단 7장을 이어붙인 형태이다.


사진출처: 문화유산채널


   혜심은 고려지성사는 물론 한국사상사에서 결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고려 후기 무신집권기 당시의 대승려다. 한국조계종을 창시한 지눌대사의 직계 제자이며 본명은 최식, 법명이 혜심이다. 혜심은 비교적 늦은 나이에 출가했는데 그전까지는 고려의 유일국립대학교였던 국자감에서 유학을 공부했다. 어머니가 몸저 눕자 학문의 길을 포기하고 어머니 간병생활을 했는데 어머니 사후 천도재를 지내다가 혜심은 지눌대사를 만나게 된다. 지눌의 밑에서 불도를 키우던 혜심은 어느덧 지눌을 이어 수선사의 법석이 되었다. 이 수선사가 지금의 송광사다. 고려 조정에서도 국왕 고종과 비선실세였던 최우는 몇 번이나 개경으로 초대했지만 혜심은 거듭 거절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고종은 혜심에게 대선사의 칭호를 하사해주었고 이는 과거시험 중 승과를 거치지 않은 승려에게는 최초의 사례였다.


   출가하기 전 혜심은 유학을 공부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혜심은 유불일치설을 주장했다. 유교나 불교나 이름만 다를 뿐 도와 심성, 인간의 도야를 연구하고 닦는 궁극적 목표는 같다며 공자의 사상을 불교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혜심은 도교에도 조야가 깊었고 도교에서 말하는 핵심사상 역시 유교나 불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사상과 철학, 종교는 말하고자 하는 바가 결국은 동일하다는 학법을 설파했다. 


혜심


   국보 42호인 목조삼존불감과 국보 43호인 혜심고신제서가 보관되어 있는 송광사도 법력이 아주 오래된 고찰이다. 원래 이름은 길상사였으나 고려시대에 수선사로 개칭하고 고려 말에 '송광사' 로 최종 변경되었다. 송광사는 현대 한국불교계를 책임지는 조계종이 만들어진 산실이다. 지눌과 혜심이 이 절의 법석으로 있은 뒤 계속해서 국사들을 배출해냈다. 뛰어난 승려들이 가장 많이 배출된 송광사를 그래서 승보사찰이라고 한다. 송광사는 합천의 해인사와 양산의 통도사와 더불어 한국 불교의 삼보사찰이라고 불린다. 삼보란 3가지 보물을 뜻하는 말로 송광사, 해인사, 통도사는 불교를 상징하는 3가지 불/법/승을 각각 간직하고 있다. 이중 '승'을 담당하는 사찰이 송광사다. 


송광사 (사진출처: 광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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