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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Feb 18. 2020

[국보 44호] '보림사 남북 3층석탑과 석등' SET

   전남 장흥군에 있는 보림사의 남북 3층석탑과 그 사이에 있는 석등은 하나의 세트로 국보로 지정되었다. 장흥군의 보림사는 신라 말 유행하였던 불교 선종 종파의 구산선문 중 하나의 사찰이다. 동북아시아에 퍼졌던 대승불교에는 교종과 선종이라는 종파가 있는데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교종이었다. 교종은 교리에 입각해 이론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색채가 짙어서 왕권의 안정화되어 있던 신라 중대에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사회가 문란해지는 신라 하대에 이르면 대중적이고 민생적인 선종이 유행한다. 특히 불교 선종은 신라 주요 지방도시를 거점으로 호족들의 비호 아래 크게 성장하면서 9개의 거대한 교권이 형성된다. 이를 구산선문이라고 하는데 전남 장흥군의 보림사는 구산선문 중 가장 먼저 문을 열었던 선종 사찰이었다. 신라 말 구산선문의 사찰은 워낙 오래되서 9개의 사찰이 전부 전해지진 못하고 있으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오래된 사찰이 끝까지 남아 있는 사찰 중 하나이다. 



모든 시대는 그 시대를 상징하는 시각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대신라의 이미지는 단연코 보림사에서 찾게 된다. 보림사를 모르는 사람은 하대신라의 시대상을 모르는 사람이고, 하대신라라는 시대상을 보르면 보림사는 그저 한반도 남쪽 끝의 한적한 절집으로만 생각될 뿐이다.

                                                                                                     -유홍준


사진출처: 장흥군청


   보림사는 860년에 창건되었지만 보림사 남북 3층석탑은 870년에 제작되었다. 탑 근처에서 제작연도를 콕 찝어주는 탑지가 출토되어서 정확한 제작연도를 알 수가 있다. 각각 5.4m, 5.9m인 남북 3층석탑은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양식처럼 3층 구조이며 모든 부분에서 온전하게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석탑 중 하나이다. 통일신라의 석탑 중 전혀 훼손되지 않고 전해지는 유산은 드물기 때문에 이 두 탑의 가치는 더욱 귀중해진다. 이 석탑을 보고 다른 통일신라의 3층 석탑과 큰 차이점을 못 느낀다면 이 두 탑이 전형적인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석가탑과 비교해보면 통일신라의 고정된 석탑양식을 쉽사리 포착해낼 수 있다.



   다만 다른 3층짜리 석탑들에 비해 1층 옥개석이 유난히 크다는 점과 옥개석의 끝이 유독 위로 치켜들려있다는 점은 보림사 남북 3층석탑만의 개성이다. 쌍둥이 석탑인 남북 3층석탑끼리는 상륜부의 머리장식 높이가 상이하다.



   두 개의 탑 사이에는 석등은 얍실한 맵시를 자랑한다. 석등은 8각형의 구조이며 지붕돌이 몸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대한다.  이렇게 완성되는 두 개의 탑과 한 개의 석등이 만들어내는 앙상블은 어떤 설계자의 의도인지  교태스럽고 중후한 멋을 동시에 풍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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