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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Feb 22. 2020

[국보 47호]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진감선사와 최치원

   경남 하동의 랜드마크 양대산맥은 화개장터와 쌍계사일 것이다. 인근에 섬진강도 있기 때문에 하동의 쌍계사 일대는 풍경이 유려한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쌍계사는 내력도 깊은 사찰로 신라 중대에 창건되었으나 840년 진감선사에 의해 개창되면서 이름도 쌍계사로 바꾸고 법맥도 교종에서 선종으로 이파하였다. 진감선사는 당나라에서 오래 유학하며 엘리트코스를 밟았던 승려로 불교음악에 능통했다고 한다. 신라인들은 물론이고 중국에서도 진감선사의 음악을 들으러 일부러 쌍계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사진출처: 경남일보

선사는 범패(불교음악)를 청아하게 잘 불러서 그 소리가 금옥처럼 맑았다. 슬픈 듯한 곡조에 나는 듯한 소리는 상쾌하고 구슬퍼, 능히 천상 사람들도 기쁘게 할 수 있었다. 그 소리가 먼 데까지 전해져 배우려는 자가 절에 가득 찼는데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나라(신라)에서 어산의 오묘함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앞다투어 코를 막고 배우듯, 옥천사(쌍계사)에 남아 있는 범음을 본받으려 하니 어찌 소리를 들려주는 것으로써 제도하는 교화가 아니겠는가?



진감선사

   쌍계사는 진감선사를 기점으로 전환의 국면을 맞았다고 볼 수 있으며 사실상 진감선사부터 지금의 쌍계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쌍계사에는 888년 입적한 진감선사를 기리기 위한 탑이 제작되었는데 이것이 국보 47호에 해당하는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 이다. 진감선사는 임종 직전 자신을 위한 탑비나 승탑을 만들지 말 것을 부탁하였으나 쌍계사에 묻은 진감선사의 불공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진감선사 입적 30년 후에 제작되었다. 



   탑비의 구성을 보면 전형적인 거북돌탑비의 형태로 심하게 손상되어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거북돌이 아주 반듯한  검은 탑비를 떠받치고 있다. 거북용은 크진 않지만 옆으로 펑퍼짐하게 뻗쳐 있으며 등껍질의 정육각형 문양은 명확한 직선으로 새김질되어 있다. 거북등과 탑비 사이에는 탑비를 받쳐주는 받침돌 비좌가 있는데 환상세계의 오묘한 구름들이 역동적으로 조각되어 있고, 지붕돌 역시 용들이 꼭대기의 여의주를 향해 힘차게 틀임하고 있다.


    진감선사탑비는 비문을 새긴 사람 때문에 더욱 유명해지기도 했다. 다름 아닌 신라 하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최치원이다. 왕명을 받은 최치원은 진감선사탑비에 2423자를 새겼다. 쌍계사에 관한 일반적 내력을 소개하는 후반부와 달리 최치원이 진감선사에 영감을 받아 내려 적은 본인의 철학사상은 아직까지도 명문으로 꼽히고 있으며 서체 역시 최치원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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