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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Feb 28. 2020

[국보 52호] 해인사 장경판전, 기적을 만드는 과학

   유명한 문화재는 오히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서 간혹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다. 팔만대장경이라 부르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과 그것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명칭의 차이는 고작 '전' 한글자이지만 문화재의 성격도 정의도 완전히 다르다. 국보 32호인 팔만대장경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고,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쉽게 말해 해인사 장경판전은 장경판을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의 일종이다. 해인사 장경판전의 공식명칭은 '고려 대장경 목판을 보관한 해인사 장경판고' 이다. 


 

사진출처: KBS

  합천의 가야산 자락에 있는 해인사 자체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이지만 장경판전이라는 도서관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졌다. 정확한 건립연대를 알 수는 없지만 조선 7대 임금이었던 세조 대로 추정하고 있다. 이전까지 팔만대장경은 강화도 선원사라는 절에서 보관하다가 태조 이성계 대에 지금의 합천 해인사로 옮겨갔다. 원래 해인사에서 별도의 서고 없이 관리했지만 이 어마어마한 양의 대장경을 효과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인프라의 필요성을 절감해 세조가 왕명으로 장경판전 설치를 지시했다.



    장경판전은 4개의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북으로 하나씩 길게 옆으로 뻗어있는 2개의 건축물이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서고다. 북쪽에 있는 건물을 법보전, 남쪽에 있는 건물을 수다라장전이라고 한다. 법보전과 수다라장전은 정면 15칸, 측면 2칸의 크기이며 길이 60m에 폭이 8.73m 에 해당하는 횡적으로 넓직함을 선보인다. 법보전과 수다라장전 사이에 있는 작은 두 개의 건축물은 동사간판전과 서사간판전이다. 두 개의 간판전에는 팔만대장경이 아닌 다른 경판전의 판본을 보관하고 있다.


     제작 이후부터 외국인들이 그토록 탐냈다는 팔만대장경이 지금까지도 완벽에 가까우리만큼 보존될 수 있었던 건 장경판전의 과학적 설계다. 거의 모든 사찰은 정남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장경판전은 서남향을 하고 있는데 서남향의 각도에서 받는 태양빛은 일조는 물론이거니와 습도와 통풍까지 해결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법보전과 수다라장전의 2층 구조 창문은 위아래가 크기가 다르다. 이는 큰 창으로 바람이 들어와 작은 창으로 빠지게 해서 바람이 골고루 퍼지게 해주기 위함이다. 장경판전 내부 흙바닥 안에는 숯, 재, 소금, 모래가 섞여 있는데 습도 조절을 위해서이다. 


    해인사 장경판전의 과학성은 지금의 과학자나 건축가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정교하고 치밀하다고 한다. 기계와 시멘트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지금의 건축공학이나 과학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자연의 과학기술이다. 애당초 팔만대장경이 600년이나 유지된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에 가깝지만 그 기적은 자연을 품은 과학이 있기에 가능했다. 


장경판전 내부


    한국에는 삼보사찰이라는 불교의 가장 귀한 보물 3가지를 각각 보관하고 있는 3개의 사찰이 있다. 3가지 보물이란 법, 불, 승이다. '승'은 승려를 뜻하는 말로 수많은 명승들을 배출해낸 순천의 송광사가 '승'을 담당하는 삼보사찰이다. 그리고 합천의 해인사가 또다른 삼보사찰 중 하나로, 장경판전으로 보관하고 있는 대장경이 3가지 보물 중 '법'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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