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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Mar 18. 2020

[국보 67호] 화엄사 각황전, 잔재주 없는 웅장함

전남 구례는 도시화된 곳은 아니지만 '연곡사'와 '화엄사'라는 미술학적으로 완벽한 보물창고를 두 개나 가지고 있는 곳이다. 아니 어쩌면 도시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수도 있으며, 바꿔 말해 연곡사와 화엄사의 기운이 급격한 산업화를 억제시켰는지도 모른다. 도시는 터의 운명이 있나보다. 운치 있는 터는 그에 따른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도시를 만들어낸다.


화엄사는 통일신라에 창건되었지만 임진왜란 때 탑, 석등 등의 석조 조형물들을 제외하곤 모조리 불타 없어졌다. 조선 후기 인조 대에 와서 화엄사를 중건하였는데, 오늘의 주인공인 각황전은 준비 기간이 길었던터라 숙종 대에 완공되었다. '각황'이란 '깨달음의 황제'라는 뜻으로 석가모니의 별명이었다. 숙종이 직접 '각황'이란 이름을 하사했다.


사진출처: 그람호


기록에는 각황전 공사에 어마어마한 재원이 투입되었고 또 대규모 인력들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각황전을 실제로 보면 과연 공사의 규모가 평범하지 않았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정면 7칸의 압도적인 규모에 2층 복층 구조로 되어 있다. 지붕도 팔작지붕 형태를 띠고 있어 팽창하는 느낌을 주며 공포도 다포 양식을 취해 한층 장식적으로 꾸며놓았다. 그러면서도 고목의 예스러운 맛을 유지하고 있으니 상반되는 양식의 장점만 고루 취하고 있다. 양식 자체는 화려하나 불필요한 잔재주들은 찾아볼 수 없다. 내부도 천장이 상당히 높아 시원시원하다. 국보 62호인 금제의 금산사 미륵전처럼 이렇게 웅장한 사찰들이 조선 후기에 유행했다.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한편 각황전 앞에는 국보 12호인 석등이 있고 그 뒷편으로는 국보 35호인 4사자 3층 석탑도 있어 화엄사에는 눈과 발이 바쁘게 돌아다닐 수밖에 없다.


사진출처: 출사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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