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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Jan 07. 2020

[국보 5호] 법주사 쌍사자석등, '벗어남'의 미학

   동양은 아주 오래동안 불교국가였기 때문에 어느 동양의 나라든 사찰은 불교미술의 집산지이자 당대예술을 반영하는 총체이기도 했다. 사찰은 살아있는 박물관인 셈이다. 따라서 사찰에 가면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 그중 많은 방문객들이 그 예술성이나 작품성을 포착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조형물이 있다. 바로 석등이다. 사찰의 석등은 탑과 마찬가지로 당대 조각예술가들이 심혈을 기울이며 조각한 어엿한 작품의 하나였으며 시기별로 유행하던 양식 또한 존재했다.


   우리 한국미술의 고전은 통일신라 중대의 경덕왕 대에 첫 번째 완성기를 이룩하였다. 예술계에서 고전이라는 것은, 혹은 완성기를 이룩했다는 것은 각 장르별로 모범기준[정전]이 형성됐다는 뜻이다. 그러나 예술이 발전하기 위해선 고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고전을 바탕으로 새로움에 도전하고 실험하면서 고전을 발전시켜야 한다. 신라 하대에는 신라 중대에 형성되었던 정전체계에서 살짝씩 벗어난 형식들이 시도되었다. 석등미술 또한 마찬가지였다. 석등의 기둥을 동물 형상, 그 중에서도 쌍사자가 석등을 바치고 있는 형상으로 대체한 것이 신라 하대에 이루어졌던 '벗어남' 이였다.  


사진 출처: 문화유산채널


  우리나라에 쌍사자 석등은 총 4기가 있다. 그중 충북 보은 속리산 법주사에 있는 쌍사자 석등은 국보 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조각연대는 신라 하대 성덕왕 19년 즉 720년 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쌍사자 석등 중 가장 오래된 쌍사자 석등이고 이것은 '쌍사자 석등'이라는 양식이 최초로 시도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자의 모양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자와 다르게 생겼다. 원래 한국에서는 사자가 살지 않는다. 따라서 전근대 사회에서 사자는 상상 속의 환상동물이다. 쌍사자는 각각 암수 사자로 가슴근육과 등근육, 허벅지의 근육이 압권이다. 반면 허리는 잘록해서 사자의 몸매가 지나칠 정도로 이상적으로 보일 수는 있으나 이는 미감상은 물론 기능상의 이유도 있다. 두 마리의 사자가 상체근육과 하체근육이 발달해 있고 허리가 잘록한 형상은 X자 구도를 만든다. 석등을 떠받치고 있어야 할 기둥으로서 가장 안정적인 X자 구도를 환상의 동물이 떠받치고 있는 재치있는 시도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두 사자가 가슴을 맞대고 두 팔을 높이 들고 있지만 모냥 떨어지지 않게 결코 발뒷꿈치를 세우는 일은 없으니 얼마나 듬직한가. 만약 발뒷꿈치를 세웠더라면 기둥으로서의 안정감이나 튼튼함이 떨어지는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두 마리의 사자에 갈기까지 조각해 디테일을 잃지 않았으며 인상 자체가 사납지 않아 악귀를 쫓는 사나운 짐승이라기보단 불법을 수호하는 극락의 애완동물인 듯하다. 


  쌍사자 석등 양식은 통일 신라의 멸망과 함께 종료되었다. 신라의 뒤를 이은 고려에서는 쌍사자 석등 양식을 잇지 않았기 때문에 쌍사자 석등 양식은 통일신라 하대에만 존재했던 조각양식이면서 4기밖에 현존하지 않는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희소성이 있고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이 오직 한국에서만 존재하는 가장 한국적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출처: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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