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적이란 쉽게 말하자면 잉크통이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쓸 때 먹물을 벼루에 붓는 용도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잉크통 하나에도 갖은 장식과 예술을 가미한 우리 선조들은 미적 감각이 탁월한 분들이긴 했나 보다. 예술을 위한 예술보다는 실생활이 예술이 되도록 늘 예술을 가까이에 두었으니 말이다.
청자 오리모양 연적은 상감기법이 발달하기 이전인 12세기, 그러니까 순청자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에 제작된 오리모양의 순청자 연적이다. 오리모양의 연적 청자는 몇 점 더 있긴 하지만 그중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이 작품이 국보 74호로 등재되었다. 국보 74호 청자 오리모양 연적은 공예술과 회화술 어느 면에서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깃털과 꼬리의 생동감은 회화의 공로이고, 오리 등 뒤에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는 연꽃은 조각의 활약상이다. 무엇보다 전체적인 형태가 펑퍼짐하되 둔해보이지 않고 탄력 있는 애교살로 보여 꼭 한 번 쥐어보고 싶은 느낌을 준다. 연적이란 용도를 고려해봤을 때 손을 쥐어야 하니 어차피 손에 쥐어야 하는데 더 쥐고 싶게끔 만든 것이다.
실제로 사용하는 문방구란 우선 서재의 변두리나 서상 위에 놓아서 안정감이 있어야 하고 또 주위의 분위기에 잡음을 발산할 만큼 조형이 번잡스러워서는 안 된다. 다루기 어려운 청자연적이나 문진 같은 작은 문방구들의 경우만 보더라도 조형이 자칫 복잡해질 듯싶지만 도리어 간명하고 순진하며 물체가 지닌 습성과 아름다움의 기미를 너무나 잘 살렸음을 알 수 있다.
-미술사학자 최순우
국보 74호도 존 개츠비가 일본인들에게 경매에 붙이기 전 간송 전형필이 사들인 작품 중 하나다. 청자 오리모양 연적도 간송미술관에서 소장 중이다.
이 작은 물체가 실물처럼 늣늣하게 보이기도 하고 아기자기하게 예뻐 보이기도 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잔재주의 공이 아니라 탁 트인 심안이 불가결한 표현에만 진실과 순정을 기울인 까닭이 아닌가 한다.
-미술사학자 최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