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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Mar 31. 2020

[국보 75호] 혼혈왕자, 표충사 청동 은입사 향완

경남 밀양 표충사에는 아주 이국적인 향완 하나가 있다. (향완이란 향로의 종류다.)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이 향완을 본다면 대한민국의 국보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드리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국보 수준의 미적 감각은 충분히 가지고 있음은 쉽게 납득할 수 있다.


사진출처: 유현의집


언뜻 로마시대의 술잔으로도 보이는 표충사의 청동 은입사 향완은 이름 그대로 청동으로 만든 향완에 은으로 무늬를 만든 향로를 말한다. 은입사란 금속제 물건에 은으로 된 실로 장식을 하는 기법을 말한다. 향완 표면에는 고려 명종 7년인 1177년에 제작되었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높이 27.5cm로 30cm 자보다 살짝 짧고 폭이 26.1cm이니 높이와 폭이 거의 동일하다. 얇은 테에 볼륨감 있는 본체, 그리고 매끄럽게 내려가는 손잡이의 라인까지 전체적인 형태미가 이상적인 선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영락없는 한국의 공예품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이 향완이 이국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테와 표면에 장식된 문양 때문일 것이다. 추상화처럼 착각하기 쉬운 이 문양은 사실 글자다.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혹은 범어라고 알려져 있는 글자들이다. 어딘가 종교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건 불교가 창시된 인도의 범어가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범어가 은과 이렇게나 잘 어울린다는 점이 새삼 놀랍다.  본체 하층부에 새겨진 연꽃그림은 향완을 신비스럽게 만들어주며, 무엇보다 손잡이의 용그림은 너무나도 생생해서 그림이 아니라 조각처럼 보인다. 향완의 손잡이를 휘감고 있는 용 때문인지 속세의 번잡함에 찌든 사람은 왠지 이 향완을 잡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사진출처: 공공누리


조사를 하던 중 내 느낌이 결코 허황된 것은 아니였다. 1965년 이 향완은 도난 당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2달 만에 서울의 범인들을 검거하는데 성공했다. 개인의 범죄도 아니고 3명이서 집단으로 도난한 한국의 대표적인 국보도난사건이었다. 조사 결과 이들은 전문적인 문화재도둑으로 표충사 향완 외에도 여러 문화재들을 절도한 전적이 있었다. 미인박명이라고 이 아름다운 보물 향완은 기구한 운명에 처할 뻔 했으나 손잡이의 이 용이 그들을 응징한 것이 아닐까 혼자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


사진출처: D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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