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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Apr 02. 2020

[국보 76호] 난중일기, 각자의 '난중일기'

국보 76호인 난중일기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현재에는 충남 아산에 있는 현충사에서 보관 중이다. '난중일기'란 이름은 이순신 장군이 직접 지은 것이 아니라 조선 후기에 와서야 붙여진 이름이다. 이순신 장군에게 난중일기는 그저 평범한 일기였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의 이 평범한 일기가 <징비록>과 더불어 임진왜란을 연구하는 가장 중요한 사료 중 하나가 되었다. <조선왕조실록>과 <징비록>은 왕실 중심적이기 때문에 임진왜란 당시 해전에 대한 생생한 기록까지 욕심낼 수는 없다. 그러나 <난중일기>는 회고록도 아니고 이순신 장군이 그때그때의 즉각적인 체험과 감상을 적었기 때문에 그 현장감이야말로 난중일기의 진가이다.


난중일기는 1592년 1월 1일부터 1598년 전사하기 이틀 전까지의 일기다. 하루도 빠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7년 간을 꾸준히 썼다는 자체가 한 사람의 끈기를 보여주는 듯하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 일기가 중간에 끊길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7년 간이나 이순신 장군이 일기를 작성했던 건 단순히 개인적인 기록의 욕심보다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마음을 다잡는 각오이고 군인으로서의 책임감이 아니었을까.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많은 사람들이 임진왜란이 시작되고 이순신 장군이 작성을 했다고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터지기 1년 전인 1591년 전라좌수사로 임명됐다. 원래 이순신 장군은 육군이었으나 유성룡의 추천으로 어마어마한 전쟁이 터지기 불과 몇 개월 전 수군 장교로 부임됐으니 역사적 타이밍이란 가끔 절묘한 듯하다. 물론 이순신 장군의 전라좌수사 임명은 류성룡이 일본의 침입을 혹시나 경계하는 노파심에서 선조에게 천거하긴 했지만 말이다. 여하튼 1591년 부임한 이순신은 전라좌수사로서 맞는 첫 해인 1592년 1월 1일부터 일기를 작성해나가기 시작했고 하필 그 해에 임진왜란이 터진 것이다.



한국의 현대소설가 이태준은 "일기란 사람의 가장 훌륭한 인생 자습서다"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난중일기의 역사적 가치, 문학적 가치를 굳이 한 번 더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성웅 이순신보다 개인 이순신에 집중하고 싶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가? 반성과 성찰은 내면의 성숙을 위해선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그저 생각으로만 그치면 안 된다. 말을 하면 생각보단 낫지만 녹음을 하지 않는 이상 휘발되어버린다. 그렇다면 가장 효과적인 반성이란 결국 글이다. 그리고 반성은 가장 개인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반성하는 글은 곧 일기가 된다.


사진출처: 뉴스줌


우리는 최근 우리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끄적거리는 창구가 많아지고 있다. 정말로 환영할만 한 일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을 얼마나 몰아세웠는가. 반성의 의미는 항상 제기되어 왔지만 그 누구도 반성과 성찰의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최근에서야 영화든, 수필이든, 소설이든 거창하지 않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각광을 받는 시대가 왔다. 그렇다고 반성과 성찰의 글이 쉬워졌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가끔 가장 친밀한 사람과 애틋한 분위기가 잡히면 어색해지곤 한다. 우리에게 가장 친밀한 사람은 누군가? 나 자신이 아닌가? 그래서 일기를 쓸 때는 가장 어색해진다. 그러나 그 어색함은 성장통이다. 반성과 성찰의 이유는 내 미래를 결정짓지 못한다. 그저 단편적인 술회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중엔 날씨만 언급되는 날도 꽤 많다.) 그래도 나의 이야기는 적어도 나에게 가장 솔직하기 때문에 가장 강력해진다. 따라서 반성과 성찰은 위대한 무언가를 만들어주지 않아도 지금의 나를 솔직하게 해준다. 그걸로 족하다. 그 어색함이, 그 솔직함이 나를 무장시키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를 쓸 때 "반드시 이 이야기를 후세에 전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쓰진 않았다. 우리는 영광스럽게도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한 사람의 가장 개인적인 글을 볼 수 있다. 난중일기를 읽을 때 전쟁의 전술과 용병술을 파악하는 것도 좋지만, 후손과 영웅의 관계보다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한 문장 한 문장에 그 글을 썼을 그 사람의 정신과 각오를 파악해보는 건 어떨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고 또 가장 보편적일 수 있으니까. 


우리도 우리 나름의 전쟁을 겪고 있다. 이 브런치를 포함해 어느 플랫폼이든 상관 없으니 당신만의 전쟁 속에서 당신만의 '난중일기'를 써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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