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구황동에서 출토된 금제여래좌상은 국보 79호로 등재되어 현재는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구황동은 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지 얼마 안 된 시점 왕실의 지원 하에 창건된 9개의 거대한 사찰을 통칭하는 용어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9개의 사찰들은 모두 이름이 '황'자가 들어갔고 왕실 사찰이다보니 산지가 아닌 평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국보 79호는 9개의 사찰들 중 황복사지의 3층 석탑(국보 37호)에서 발견되었다.
구황동 금제여래좌상은 높이 12cm밖에 되지 않은 아주 아담한 사이즈다. 이름에서도 나와있듯 이 불상은 '금동'이 아니라 '금제'다. 금은 워낙 귀한 재료이기 때문에 금동불상은 청동으로 제작하고 그 겉면만 금으로 도색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금제여래좌상은 100% 순금으로만 제작되었다. 국보에 경제적 가치를 매긴다는 것이 몽매한 짓이긴 하지만 순도 100% 황금인 이 불상의 경제적 가치는 작은 크기임에도 어마어마하다. 금속공예에 대해서 실력을 뽐내려는 신라인들의 자부심이 고스란히 담긴 건 아닐까.
인자한듯 후덕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금제여래좌상은 대좌 위에 앉아 있지만 긴 옷자락으로 인해 대좌가 가려져 있다. 자락을 밑으로 낄게 뺀만큼 옷주름들이 몇 겹씩 겹쳐 있다. 법의가 상하의 구분이 안 되어 있으며 의상이 전체적으로 흘러져 내리는 느낌을 주고 있다. 법의 안에 대각선의 내의를 입고 있기도 하다. 광배는 총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몸의 광배와 머리의 광배가 두 개가 물려 있어 불상 전체를 받쳐주고 있고, 머리 뒷부분에는 연꽃 장식의 광배를 하나 더 배치해놓아 마치 진리의 만개를 상징하는 듯하다. 수인은 오른손바닥으로 앞으로 내미는 '시무외인'인데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