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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Jan 07. 2020

[국보 7호] 봉선홍경사 갈기비, 나는 괴작이다.

   국보 7호는 천안시 성환읍에 있는 봉선홍경사 갈기비이다. 지금은 터로만 남아 있는 봉선홍경사는 고려의 8대 왕 현종 12년이었던 1021년 왕명으로 창건된 절이다. 예나 지금이나 천안은 충청-경상-전라 삼남지방으로 육로를 통해 내려가기 위해선 지나쳐야만 하는 곳으로, 교통의 요충지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만큼 행인들을 상대로 한 범죄가 자주 일어나자 도시 개발 차원에서 고려 현종이 절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휴식의 장소와 안전한 거처를 마련해주도록 했다. 고려 말 이규보는 봉선홍경사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200여 칸의 당우에 여러 공덕상을 그리고 봉선 홍경사라는 사액을 받았다. 마치 도솔천과 같이 신비롭고, 종과 탑이 있었다. 장엄하기가 이를 데 없어 등이 1000개나 이어져 켜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봉선홍경사는 남아 있지 않고 부속조각품이었던 갈기비만이 남아 있다. 주로 사찰에는 거북비를 세우는 것이 관례인데 일반 거북비보다 규모가 작은 석비를 갈(기)비라고 한다. 보통 갈기비는 거북받침대나 덮개돌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국보 7호인 봉선홍경사 갈기비는 갈기비임에도 거북받침대와 덮개돌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특히나 일반 거북비들의 거북모양보다 훨씬 인상적이고 작품성이 뛰어나다. 


사진 출처: 크레존


   거북비의 거북은 사실 완전한 거북이 아니다. 장수의 상징인 거북의 형상을 빌려와 영원을 구하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용, 현무, 이무기 등 상상 속의 동물을 표현한 것이다. 지금의 거북비는 알 수 없는 한자들이 작은 글씨로 빼곡히 조각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비운의 역할을 맡고 있지만, 비석 안의 내용은 현장에서 즉각 읽을 순 없어도 거북을 보는 재미는 분명 쏠쏠하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거북받침돌의 거북도 전부 다른 얼굴, 다른 생김새를 갖고 있다. 어떤 것은 사나워보이고, 어떤 것은 용맹해보이고, 어떤 것은 늠름해보이고, 어떤 것은 앙증맞고, 어떤 것은 익살스럽다.


  봉선홍경사 갈기비의 거북은 우선 시선이 일반적이지 않다. 거의 모든 거북비들은 정면을 바라보는데, 봉선홍경사 갈기비의 거북은 오른편을 응시하고 있다. 거북비의 거북은 어찌됐든 받침돌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육중해야 하고 다소 정적인 느낌을 주지만, 봉선홍경사 갈기비는 고개를 돌려 우상향을 바라보게 하는 것만으로 기능적은 역할은 다하면서도 역동적인 느낌을 부여했다. 목의 골격하며 목을 돌렸을 때의 주름하며 이 갈기비는 걸작인 동시에 괴작이다. 또한 거북의 얼굴인 귀두마저 큰 편에 속하는데, 거대한 이빨이나 큼지막한 귀갈퀴를 보면 환상 속의 동물이 실재하다가 돌로 굳어진 건 아닐까 하는 상상까지 하게 만든다. 아울러 등껍질이나 몸통의 비늘까지 아주 섬세하면서도 입체적이고 굳세다. 지붕돌에는 도원경에만 있을 법한 구름을 조각해 이 작품이 범작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절이 창건되고 5년 후였던 1026년 만들어진 이 갈기비의 비문은 고려 역사 통틀어 최고의 지식인 겸 대학자로 숭앙받고 있는 해동공자 최충이 짓고, 고려시대 서예가였던 백현례가 썼다. 서체는 아주 힘있는 글씨로 그 유구한 세월에 마모되었을 텐데도 아직까지 굳건하고 한 획 한 획 정확하게 남아있다. 모든 글자가 정확하게 3cm로 규격되어 있다고 한다. 글자를 이어쓰지 않고 획을 분절시켜 글자의 정형성과 짜임새를 강조하는 글자를 해서체라고 하는데, 봉선홍경사 갈기비의 글자가 그 전형을 보여준다. 


탁본 (사진출처: 우리역사넷)


   봉선홍경사 갈기비처럼 절터만 남아있고 비석 혼자 남아있는 경우 안타까운 점이 있다.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보호각 안에 문화재를 두었기 때문에 온전한 감상이 힘들다. 좀 더 가까이 가서 섬세한 필치와 디자인을 감상하고 싶은데 접근금지이기 때문에 거리를 두고 창살 틈이 가린 채 작품을 감상해야 한다. 오로지 이 비석만을 보러 갔지만 보호각이 더 가까이 오는 것을 막으니 항상 아쉬운 마음을 한 켠에 두고 돌아와야 하니 전문가들이 아닌 일반 사람들이 찾아올 리 만무하다.


 

사진출처: 천안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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