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대한민국의 일부 땅이 중국의 식민영역이었던 때가 있었다. 고조선이 중국의 한나라에 의해 멸망한 후 한나라는 옛 고조선의 영토에 4개의 군을 설치해 괴뢰국을 세웠다. 그중 3개는 금세 사라졌지만 대동강을 끼고 성장했던 낙랑군은 오랫동안 남아있어 고구려-백제-신라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유물들이 지금의 대동강 인근에서 출토되고 있다. 낙랑군에 소속되었던 현은 25개이고 인구 수는 약 28만 명 정도였다고 한다. 낙랑군의 문화나 풍토는 완전한 중국풍도 아니었으며 이국적인 요소가 가뜩이나 지역적 색채가 뚜렷했던 시기의 토착문화와 결합되어 한국미술계의 이색적인 영역을 확장해주었다.
평양의 석암리 9호 무덤이 대표적인 낙랑군의 고분으로 이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통해 우리에겐 다소 멀게만 느껴지는 낙랑군의 생활과 예술을 간접체험해볼 수 있다. 이중 압권은 국보 89호인 금제띠고리이다. 금제띠고리는 허리띠를 연결하는 장식으로 황금빛이 반짝거리는 화려한 용은 모든 시선을 집중시킨다. 용과 구름들의 유려한 곡선은 조형의 활력을 한층 더 격정적으로 만들어준다. 아주 작고 얇은 금판 혹은 금구슬을 일일이 새겨넣어 영롱한 신비감을 자아낸다. 1세기 경에 이 정도의 뛰어난 금세공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낙랑군의 역량이 감탄스러울 뿐이다. 41개 청록색의 터키석은 비단 위의 꽃이다.
낙랑군은 한반도 중서부에 위치해 지리적 요건으로 중국의 문물을 한반도 북부와 남부에 전해주는 교두보 역할을 해주었다. 평양 석암리의 금제띠고리는 어떻게든 신라의 금세공기술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낙랑의 금제띠고리장식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관람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