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통의 백자에 기대하는 것은 티없이 맑고 순백한 고고함, 감상자의 마음을 정갈하게 하지 않으면 차마 온전히 볼 수 없을 것 같은 하야디하얀 설화의 세상일 것이다. 물론 이것이 백자의 본질이기는 하나 백자는 조선사회의 역사와 함께 다양한 변천과정을 겪어왔다. 조선후기 18세기에 이르면 백자는 고매함을 한층 더 강조시킨 청화백자와 다소 투박하지만 고색한 맛을 내주는 철화백자가 유행하게 된다. 국보 93호 철화포도원숭이문 백자항아리는 조선시대 18세기를 대표하는 철화백자이다.
철화백자란 초벌한 백자 위에 산화철을 이용해 흑갈색 그림을 그린 후 재벌하는 도자를 말하며 그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나뉜다. 철화포도원숭이문 백자항아리는 포도와 원숭이 철화를 그려넣었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포도와 포도잎을 아주 넓직하게 그려넣어 백자의 반 이상을 차지하며 공간밀도를 높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항아리 전체를 두르고 있는 포도 그림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어서 전반적으로 꽉 찬 느낌을 준다. 언뜻 원숭이를 찾기가 힘들지만 포도잎과 포도잎을 건너고 있는 작은 원숭이가 재치있게 그려져 있다. 원숭이가 차지하는 그림의 비중이 적어 없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원숭이 한 마리가 있음으로 해서 항아리의 익살스러움이 더해졌다. 고매하고 정결한 백자라기보단 조금 더 대중적이고 친근하게 만들기 위해 여백을 최소화한 듯하다.
형태미도 아늑하고 푸근하다. 키가 크지 않고 우람하게 서있는 모습이 듬직하고 또 허리가 급격하게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백자가 이토록 친숙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저 넓은 항아리를 꼭 껴안아보고 싶은 욕구를 버릴 재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