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96호 청자 구룡형 주전자는 국보 61호인 청자 어룡형 주전자와 비교해보면 또다른 감상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미적 우열을 가리는 차원이 아닌 같은 주제로 상반되게 표현된 두 청자를 통해 내가 더 좋아하는 스타일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어룡이란 말그대로 물고기에서 용이 된 상상의 동물이고, 구룡이란 거북이가 용으로 변한 상상의 동물이다. 따라서 어룡형 주전자는 물고기의 도약력을 표현하기 위해 수직적인 상승감을 표현했고, 구룡형 주전자는 거북이 특유의 우직함을 표현하기 위해 묵직하고 늠름하게 제작되었다. 구룡 역시 어룡처럼 하늘을 매섭게 보고 있어 준열함이 뒤떨어지진 않는다. 물갈퀴도 사실적이진 않지만 구룡의 비범함을 강조해주고 있다. 그런데 구룡이 앉고 있는 연꽃받침대는 또 귀엽고 아담한 맛이 있다. 그래서 청자 구룡형의 주전자는 사납고 용맹해보이지만 어딘가 친숙해서 전혀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구룡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살펴보면 그 디테일을 찾아내는 감상도 남다를 것이다.
이 청자구룡형 주전자는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에서 강압적으로 빼앗아 간 고려청자 중 하나였다. 이토 히로부미는 유독 한국의 도자에 큰 관심이 많았고 그의 권위를 사용해 국보급 청자들을 하나 같이 쓰러가버린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악질적인 안목이 야속할 뿐이다. 청자 구룡형 주전자는 일본국립박물관에 있다가 1966년 5월 반환받았다. 참고로 이토 히로부미가 청자 구룡형 주전자를 포함해 일본 천황에게 진상한 고려청자가 97점. 이 97점이 청자 구룡형 주전자가 한국으로 올 때 다같이 귀국했으니 재외동포 귀국의 반가움이 이런 게 아닐까.
연꽃송이 위에 펑퍼짐하게 둥우리를 치고 앉은 거북의 맵시는 아무리 보아도 한국적인 환상이요 또 한국적인 맘 편한 앉음새가 아닌가 한다. 마치 잘생긴 어미닭이 양자바른 처마 밑에서 둥우리를 치고 앉은 자세라고나 할까. 조금도 도도해 보이거나 거드름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아서 좋다. 말하자면 곱고 차가운 그 청자 살결로 빚어진 값진 그릇을 이처럼 따스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 역시 너그럽고도 소탈한 도공들의 마음 자세에서 연유한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