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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Apr 29. 2020

[국보 95호]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

고려청자는 독보적인 작품 하나 고르기가 힘들 만큼 전부 각자만의 개성을 발휘하며 저마다의 빛을 뽐낸다. 그럼에도 주관적인 견해 100%로 하나만 최고작을 꼽으라면 나는 국보 95호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를 선택할 것이다.


첫인상에 이 청자의 용도가 향로임을 알아차리는 건 쉽지 않다. 나에게 이 향로의 첫인상은 만개한 꽃이었다. 내가 본 그 어느 꽃보다 환상적이고 영롱하고 내가 있는 공간이 현실세계가 아니라고 자각되게끔 하던 꽃이었다. 아마 그 비결은 묘사할 대상의 윤곽만을 남겨 놓고 나머지 부분은 파버리는 투각법 때문일 것이다. 투각된 조각품이야 많다만 투각칠보문뚜껑 향로처럼 미풍에 흔들리는 듯한 꽃잎 한 장 한 장  가벼움을 살리긴 힘들 것이다. 향이 뿜어져 나오는 뚜껑의 전보는 또 어떤가. 네잎 꽃이 연이어져 형성된 둥그런 전보는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의 얼굴처럼 앙증맞고 사랑스럽다. 이렇게 향로의 조형술에 취해 자세히 구경하던 찰나 나를 가장 즐겁게 해주는 받침대의 토끼 세 마리.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곤란한 아름다움이다.



비가 개고 안개가 걷히면 먼 산마루 위에 담담하고 갓맑은 하늘빛이 산뜻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하늘색의 미묘한 아름다움은 곧잘 청자의 푸른 빛깔에 비유되어서 '우후청천색'이라는 말이 생겨났지만 무심코 고려청자의 이 푸른빛을 들여다보노라면 정말 비 갠 후의 하늘처럼 마음이 한결 조용해진다. 마치 고려사람들의 오랜 시름과 염원, 그리고 가냘픈 애환을 한꺼번에 걸러낸 것만 같은 푸른빛, 으스댈 줄도 빈정댈 줄도 모르는, 그리고 대로는 미소하고 때로는 속삭이는, 또 때로는 깊은 생각에 호젓이 잠겨 있는 이 푸른빛이 자랑스러워 고려 사람들은 '비색'이라고 이름 지어 불렀다.                       

   -최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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