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장 많이 ‘들어왔던’ 영화를 꼽으라면 <노팅힐>이다. 영화 자체만으로도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 보고 또 봐도 물론 좋은 영화였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휴 그렌트의 완벽한 영국식 발음과 줄리아 로버츠의 미국식 영어 발음이 한편의 영화에 그대로 녹여져 있는 까닭에 영어듣기와 말하기로 영어 강사들이 가장 추천했던 영화중에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두 배우의 영어를 습득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있었는데, 귀찮을 때는 틀어만 둬도 나쁘지 않다는 말에 정말 자주 틀어두기는 했다. 간단한 영어 대사는 외울 정도로 많이 들었고, 유럽 배낭 여행을 하게 되면 노팅힐은 반드시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런던을 유럽 배낭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로 정했다.
히드로 공항의 이미지는 생각보다 다소 낡고 남루해 보였다. 여객 사업을 일찌감치 시작했던 까닭이었는지 인천공항처럼 여행자를 압도하는 그런 아우라는 없었지만, 입국 심사는 여행자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지금까지 여행했던 나라 중 가장 까다로웠던 입국심사였다. 뭘 하러 왔는지부터 해서 출국시 비행기 티켓, 여정 동안 머물 숙소의 바우처까지 보여줘야 했으며, 신상에 대한 질문도 빼놓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불쌍하게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돈은 얼마나 가지고 왔는지 가져온 카드에 계좌잔고는 어느 정도 있는지도 조사를 했다. 런던이 마지막 여행지였다면, 계좌잔고 때문에 입국 거부당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약간은 복잡한 입국 심사를 마치고 탑승했던 지하철의 크기는 높았던 입국 심사의 벽과 비교했을 때는 다소 작은 편이었다. 지하철에 탔을 때, 반대편 의자에 발을 올리지 말라는 경고 문구가 붙어있을 정도로 너비가 좁은 편이었다. 마치 놀이 기구를 타는 것처럼 아기자기 하기도 했고, 산업 혁명이 가장 먼저 시작된 나라라는 사실을 직면하는 것 같았다. 작은 크기였지만 150년도 이전에 개통됐던 지하철의 전통과 역사의 위대함을 내뿜는 것처럼 여겨졌다.
지하철에서 스며 나온 경외감을 발걸음에 담아 역시 영국을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하며 숙소로 향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숙소가 24인실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다시 봐도 명백한 나의 실수였고, 그 누구도 탓할 수 없었다. 방을 바꿀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어쩐지 너무도 싼값이라 의심했어야 했는데, 급히 예약하느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던 나를 질책할 뿐이었다. 이것도 경험이라 생각하며 예약했던 3일을 24인실에서 지냈지만, 적게 먹고 관광을 조금 하더라도 이 같은 선택을 다시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 많이 모여 있다 보니 이상한 냄새는 물론, 잠을 자는 순간에도 신변이나 도난의 위험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불편함에서 벗어나고자 다른 숙소를 알아보던 찰나 한인 민박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호스트를 만나게 됐다. 운이 좋게도 이후 4일은 3인실을 혼자서 쓸 수 있게 되는 행운이 찾아오기도 했다. 정말이지 하늘과 땅 차이의 숙소를 일주일이 조금 넘는 시간에 모두 경험했다. 여행자에게 숙소는 잠자는 곳 그 이상은 아니라고 여겼지만, 안락함이 주는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런던에서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영국은 해가지지 않는 나라로도 유명했다. 과거 식민지 정복 시절 전 세계에 영국 식민지가 있었던 까닭에 영국에서 실제로 해가 지더라도, 다른 식민지 국가에는 해가 떠있기 때문이었다. 비단 그 이유만은 아니었던 것도 같다. 정말로 해가 잘 떨어지지 않는 나라였다. 여행을 했던 당시 5월 말 여름이었는데, 오후 9시가 되어도 해가지지 않았다. 오후 10시 정도나 돼서야 좀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아침에는 새벽 4시쯤이면 환하게 해가 떠있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수식어가 여전히 유효한 것 같았다. 그 덕분에 유명한 관광지에서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었다.
버킹엄 궁전, 빅벤, 런던아이 같은 각종 명소가 처음에는 꿈같이 느껴졌다. 생애 처음으로 방문하는 유럽 관광지였기 때문에 그 감흥이 더 크게 느껴졌다. 조금은 현실이 아닌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버킹엄 궁전 교대식을 보면서 이것이 정말 영화인지 아니면 진짜 중세로 잠깐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인지 하는 생각도 들면서, 그래도 너무 늦지는 않은 나이에 이런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기도 했다. 특히, 그토록 지겹게 봐왔던 영화 <노팅힐>의 거리로 갔을 때는 줄리아 로버츠가 그대로 어디선가 걸어올 것만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생각일 뿐이었다. 노팅힐의 거리는 영화에서처럼 평화로운 런던의 일상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 대신 예상하지 못하게 당시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 커플을 아주 멀리서 볼 수 있었다. 엠파이어 극장 주변을 지나가는 길이었는데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가 영화 시사회를 겸해, 곧 방문한다는 것이었다. 어쩌다보니 배우들이 출입하는 뒷문을 지나가던 길이었는데, 정말 지근 거리에서 할리우드 스타를 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기다리는 30분 동안 할리우드 스타의 경호원 얼굴만 오랫동안 봤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보는 것은 결국 포기하고, 엠파이어 극장 테라스에 나와 있는 두 사람을 아주 멀리서 볼 수 있었다. 사실은 그 두 사람이 누구인지도 정확히 알아볼 수 없는 거리에서 봤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생각해 보니 뮤지컬 배우들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봤었다. 또, 정말 운이 좋게도 <맘마미아> 관람을 할 당시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가격으로 배우들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좌석을 구매할 수 있었다. 뮤지컬 자체도 흥이 났었지만 가까이서 배우들 표정 하나, 하나를 다 보고 있자니, 뮤지컬 속에 들어있는 것만 같았다. 커튼콜을 할 때는 뮤지컬 극장의 직원들까지도 함께 춤을 추며, 나 역시 춤이라도 춰야 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쩌면 직원들이 더 신났을 정도였고, 어떤 손님은 매일 이렇게 춤을 추는지 묻자 직원은 당연히 그렇다며 흔쾌히 답을 할 정도였다. 오랜 시간 지났지만 그 순간의 희열이 아직도 가슴 속에 남아있는 느낌이다.
반면 <오페라의 유령>을 보러 갔을 때는 왠지 모를 문화 충격에 휩싸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별 생각 없이 관광을 마치고 시간에 맞춰 극장으로 입장하는데, 혹시 입장을 거부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의 80%이상이 남자는 정장 수트, 여자는 이브닝드레스 같은 다소 격식을 갖춘 옷을 입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맘마미아> 극장에서 봤던 관객들의 옷차림과는 확연히 달랐다. 뭔가 뮤지컬의 성격에 맞춰서 옷을 입고 오는 것이 공연에 대한 자연스러운 예의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더불어 런던이 원조 뮤지컬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데는 관람객들이 문화를 대하는 태도도 한몫 했다고 생각된다.
최근 영화 <노팅힐>을 다시 한 번 봤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휴 그렌트가 기자인 것처럼 안젤리나 졸리에게 영국에서 얼마나 더 머물 것인지 질문을 하자, 안젤리나 졸리는 영원히 머물 것이라는 대답을 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런던 여행 이전과 달리 영화 마지막 안젤리나 졸리의 대사가 새롭게 다가왔다. 영화를 보는 동안 런던에서의 추억들이 살아난 영향인지, 안젤리나 졸리와는 다소 다른 의미로 런던은 영원히 머물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라는 사실에 동의하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런던은 지금까지 여행한 나라 중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도시였으며, 제일 먼저 방문했던 유럽이었다. 때문인지 이 글에서 모두 표현하지 못했지만 그만큼 좋은 추억도 많았고 처음 경험해 보는 일들도 여행지 곳곳에 있었고 다소 힘들었지만 스스로를 성장하게 만들었던 순간도 적지 않았다. 기회가 다시 찾아온다면 런던을 200% 가슴으로 느끼고 경험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