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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 vs 희생양"의 딜레마

by Edward Yoon


패턴 인식: 똑같은 영화, 다른 배우들


15년 넘는 경력에 절반을 CTO로 살아보니 재미있는 발견이 있다. 절반의 시간이 조직 정치와 기술 리더십의 복잡한 줄타기였다는 것. 그 중에서도 가장 익숙한 패턴이 바로 "혁신적 해결책을 가진 외부인 vs 기존 조직의 저항" 구도다.


마치 정해진 대본이 있는 것처럼, 어느 회사를 가든 비슷한 드라마가 펼쳐진다.


Act 1: 허니문 기간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사람이 왔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위협적이면서 동시에 필요하다

조직 구성원들의 기대 섞인 시선

"이번엔 정말 뭔가 달라질 것 같은데?" 하는 설렘


Act 2: 현실의 벽

조직은 변화를 원하면서도 두려워한다

"좋은 아이디어인 건 알겠는데... 위험하지 않을까?"

기존 시스템에 익숙한 사람들의 은밀한 저항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방식도 나름 괜찮았는데..."


Act 3: 승부차기의 순간

성공하면 "우리가 잘했어", 실패하면 "그 놈이 망쳤어"


이 대목이 가장 아이러니하다. 성공의 순간엔 집단의 성과가 되고, 실패의 순간엔 개인의 책임이 된다. 마치 축구에서 골 넣으면 팀 플레이, 골 못 넣으면 스트라이커 탓인 것처럼. 실패의 책임은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괴롭힌다.


조직의 이중적 태도: 마음과 입이 다른 사람들


겉으로는: "너무 소소하고 별것 없어 보이는데?" 실제로는: "이것도 실패하면 정말 끝장이야"라는 공포


이 이중성이야말로 조직 변화를 어렵게 만드는 핵심이다. 입으론 대수롭지 않다고 하면서, 속으론 모든 것을 걸고 있다. 리스크는 최소화하고 싶지만 임팩트는 최대화하고 싶은 인간의 욕심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반복해서 얻은 깨달음


인사이트 1: 점진적 접근이 정답

"혁명보다는 진화를"

한 번에 모든 걸 바꾸려 하면 백전백패다. 대신 작은 성공을 쌓아가며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Week 1: "이런 아이디어 어때요?" (아이디어 테스트)

Month 1: "작은 프로토타입 만들어봤어요" (가능성 증명)

Month 3: "파일럿으로 해보니 이런 결과가..." (데이터 기반 설득)

Month 6: "이제 본격적으로 해볼까요?" (자연스러운 확장)


인사이트 2: 세련된 정치적 감각


"누구의 자존심을 건드릴지 미리 계산하기"

기술적으로 완벽한 솔루션도 정치적으로 무딜하면 실패한다. 핵심은:


기존 리더들을 적이 아닌 파트너로 만들기

"당신들 아이디어에 기술적 뒷받침을 해드리겠다" 프레임

성과는 나누고, 책임은 함께 지는 자세


인사이트 3: 타이밍의 예술


"위기가 기회다"


조직이 정말 절망적일 때가 오히려 변화에 가장 열려있는 순간이다. 평상시엔 "굳이 바꿀 필요 있어?"라고 하던 사람들이 위기 상황에선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로 마음이 바뀐다.


마무리: 변화의 예술가가 되기


오랜 시간 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깨달은 것은, 조직 변화는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것이다.

올바른 솔루션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언제, 어떻게, 누구를 통해 그 변화를 만들어갈지에 대한 세련된 감각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원자가 되려 하지 말고, 조력자가 되려 하라"는 것.

영웅이 되려는 순간, 희생양이 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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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실행이고, 실행은 기술이 아니라 정치다"

- 이미 은퇴 준비중인 16년차 엔지니어의 뼈아픈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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