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넘는 경력에 절반을 CTO로 살아보니 재미있는 발견이 있다. 절반의 시간이 조직 정치와 기술 리더십의 복잡한 줄타기였다는 것. 그 중에서도 가장 익숙한 패턴이 바로 "혁신적 해결책을 가진 외부인 vs 기존 조직의 저항" 구도다.
마치 정해진 대본이 있는 것처럼, 어느 회사를 가든 비슷한 드라마가 펼쳐진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사람이 왔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위협적이면서 동시에 필요하다
조직 구성원들의 기대 섞인 시선
"이번엔 정말 뭔가 달라질 것 같은데?" 하는 설렘
조직은 변화를 원하면서도 두려워한다
"좋은 아이디어인 건 알겠는데... 위험하지 않을까?"
기존 시스템에 익숙한 사람들의 은밀한 저항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방식도 나름 괜찮았는데..."
성공하면 "우리가 잘했어", 실패하면 "그 놈이 망쳤어"
이 대목이 가장 아이러니하다. 성공의 순간엔 집단의 성과가 되고, 실패의 순간엔 개인의 책임이 된다. 마치 축구에서 골 넣으면 팀 플레이, 골 못 넣으면 스트라이커 탓인 것처럼. 실패의 책임은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괴롭힌다.
겉으로는: "너무 소소하고 별것 없어 보이는데?" 실제로는: "이것도 실패하면 정말 끝장이야"라는 공포
이 이중성이야말로 조직 변화를 어렵게 만드는 핵심이다. 입으론 대수롭지 않다고 하면서, 속으론 모든 것을 걸고 있다. 리스크는 최소화하고 싶지만 임팩트는 최대화하고 싶은 인간의 욕심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혁명보다는 진화를"
한 번에 모든 걸 바꾸려 하면 백전백패다. 대신 작은 성공을 쌓아가며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Week 1: "이런 아이디어 어때요?" (아이디어 테스트)
Month 1: "작은 프로토타입 만들어봤어요" (가능성 증명)
Month 3: "파일럿으로 해보니 이런 결과가..." (데이터 기반 설득)
Month 6: "이제 본격적으로 해볼까요?" (자연스러운 확장)
"누구의 자존심을 건드릴지 미리 계산하기"
기술적으로 완벽한 솔루션도 정치적으로 무딜하면 실패한다. 핵심은:
기존 리더들을 적이 아닌 파트너로 만들기
"당신들 아이디어에 기술적 뒷받침을 해드리겠다" 프레임
성과는 나누고, 책임은 함께 지는 자세
"위기가 기회다"
조직이 정말 절망적일 때가 오히려 변화에 가장 열려있는 순간이다. 평상시엔 "굳이 바꿀 필요 있어?"라고 하던 사람들이 위기 상황에선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로 마음이 바뀐다.
오랜 시간 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깨달은 것은, 조직 변화는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것이다.
올바른 솔루션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언제, 어떻게, 누구를 통해 그 변화를 만들어갈지에 대한 세련된 감각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원자가 되려 하지 말고, 조력자가 되려 하라"는 것.
영웅이 되려는 순간, 희생양이 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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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실행이고, 실행은 기술이 아니라 정치다"
- 이미 은퇴 준비중인 16년차 엔지니어의 뼈아픈 깨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