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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요한 Feb 15. 2024

Ep. 2 두번째 응급실, 나를 돌아보다

 큰형 가족이 집에 오기 전날, 저녁에 수요예배가 있던 날의 이야기다.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는 아버지가 담임하시는 조그만 개척 교회다. 아버지는 젊을 때부터 한 직장을 오래 다니시다 내가 성인이 될 때쯤 야간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목회와 직장 일을 병행하신다. 매주 수요일이면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셔서 교회에서 어머니가 차려주는 저녁을 드시고 예배를 진행하신다. 그런데 그날은 어머니가 예배를 가는 것이 무리였기에, 아버지 혼자 저녁을 해결하시고 예배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나는 수요예배를 앞두고 특별한 일정이 없었기에, 집 근처 카페에 가서 공부를 할 계획이었다. 나는 집을 나가기 전 어머니한테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그냥 쉬고 계시라 했다. 어머니는 안마의자에 누워계셨고, 자신은 쉬고 있을테니 나가서 볼일을 보고 오라고 하셨다.

 카페에 간지 한시간 정도 지났을까?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갑자기 지난번처럼  어지럽고, 왼손이 마비가 되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곧장 집으로 가서 어머니의 발을 주물러주고 따뜻한 물을 갖다 주었고, 시간이 좀 지나니 다행히 증상이 가라앉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무래도 안마의자의 압력으로 인해 혈관에 무리가 간 것 같다고 얘기하셨다.


 한 차례의 위급상황을 넘긴 후 나는 어머니를 홀로 집에 두고 수요예배를 갔다. 다같이 찬양을 부르는 중이었는데, 앞에서 찬양을 인도하던 아버지는 나에게 핸드폰을 건네셨다.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오는 중이었고, 분명 좋지 않은 일 때문일 거라고 직감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어지러움 증상이 또 찾아왔는데 집에 혼자 있는게 무서웠는지 119에 신고를 하셨다고 한다. 상황을 아버지한테 전달하자 택시를 타고 빨리 집에 가보라며 나를 보내시고는 예배를 이어가셨다.

 

 교회랑 집이랑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고, 퇴근시간 쯤이여서 택시가 잡힐 리 없었다. 나는 그저 집까지 뛰어갈 수 밖에 없었다. 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우리집 쪽으로 향하고 있는 구급차를 발견했고, 나는 우리집 앞까지 차를 안내해주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소방대원 분들과 집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어느정도 의식이 좋아진 상태였다. 응급실로 후송되기 전에 혼자서 화장실까지 들를 정도였으니, 신고 당시보다는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겉으로 드러나는 병이 아니다보니 제 3자가 보기에 자칫 꾀병이나 엄살로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소방 대원분들에게는 약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어머니는 들것에 누워 구급차로 옮겨졌고, 나 또한 구급차에 앉아 어머니의 의식을 확인하며 계속 발을 주물러주었다.

 출동한 소방대원 분들 중에는 내 또래 혹은 나보다 어려보이는 여자 대원이 계셨다. 작은 키였지만 목소리와 표정에서 강인함이 흘러나오는 분이었다. 어린 나이에 치열한 시험을 통과하고, 생명이 오가는 공적 업무를 하다 보니 똑부러지고 강인할 수 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몇년 전 까지만 해도 군에서 나이에 맞지 않는 높은 직급을 가졌었기에, 그 부담과 책임을 가지고 일 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역하고 제대로된 직업도 갖추지 않고 살고 있기에, 그 소방대원 분께 뭔가 모를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대전 선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대기하고 있던 간호사님이 어머니의 상황을 물어가며 능숙하게 조치했다. 나 또한 보호자이기 때문에 잔뜩 긴장하며 간호사님과 협조를 하려 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조치가 아무것도 없는게 무언가 창피했다. 스물 여덟살의 건장한 남자이지만, 의료 시스템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의 진료비와 수술비를 모두 대줄 수 있을만한 경제력이 되는 것도 아니기에 그저 어머니의 옆을 지키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응급실에 들어가자마자 어머니의 혈압을 측정했는데 200이 넘어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상태였다. 아무리 혈압이 높아도 180~190정도라는데 200이 넘는다니, 정말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간호사님들은 혈액 검사를 하기 전까지 안정을 취하며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어머니와 응급실에서 둘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다. 어머니는 내일 손주들이 오기로 했는데 오늘 입원하면 어떡하냐며 하소연을 하고, 이 모든 상황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보며 믿음으로 이겨내겠다는 말을 하셨다. 나는 그저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긍정적인 미래를 얘기 하는데만 전념했다.


 이십분 정도 기다리자 어려보이는 남자 간호사 한 분이 들어왔다. 혈액 검사를 해야한다며 어머니의 팔꿈치 안쪽에 주삿바늘을 꽂았으나 피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통증을 참으며 입으로 바람 새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 그 간호사는 거듭 죄송하다 했고 다른 간호사를 불러오겠다며 응급실을 나갔다.

 얼마 후 여자 간호사 한 분이 들어와 어머니께 반존대를 하며 혈액 검사를 하겠다고 했다. 딱 보아도 내 또래로 보였는데 나름의 경력에서 묻어나는, 환자들과 친근하게 지내기 위한 말투인 것 같았다. 그 간호사는 어머니의 손등을 툭툭 치며 혈관이 올라오게끔 한 후 바늘을 꽂았다. 아무래도 손등은 통증에 예민한 부위기 때문에 보는 나까지 불안했다. 그러나 피는 나오지 않고, 어머니의 손등만 퉁퉁 붓게 되었다. 간호사는 바로 사과하며 다시 능숙하게 팔꿈치 안쪽에 바늘을 꽂았다. 이번에는 피가 조금 나오는 듯 했다. 나는 제발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랐고, 계속해서 속으로 기도했다. 그러나 피스톤을 잡아당길 때 느낌이 뻣뻣했고, 더 잡아당기자 어머니는 통증을 호소했다. 두 차례의 혈액 검사에 실패한 간호사는 다시 다른 간호사를 불러오겠다며 나갔다.

 또 다른 간호사가 들어와 차분하게 혈액 검사를 시도했는데, 이번에도 두 차례나 실패하였다. 두꺼운 바늘을 수차례 꽂았다 뺐다 하며 아파하는 어머니를 바로 옆에서 보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다. 나는 계속 어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계속 기도하는 수 밖에 없었다.

 

 실수를 거듭하며 응급환자에게 고통만 주는 간호사들에게 화를 낼 생각도 못했다. 일단 아파하는 어머니를 달래주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그분들이라고 실패하고 싶었겠나, 내가 봐도 어머니의 혈관이 워낙 안 보이긴 했다. 그리고 간호사 분들한테 화를 낸다고 상황이 뭐가 달라지겠는가. 결국 마지막에 삼십대 후반정도로 보이는 남자 수간호사 분이 오셔서 한 번에 혈액 검사를 성공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왜 진작에 그 간호사님을 불러오지 않았던 걸까 의문이다.


 혈액 검사 후 담당의의 소견을 들어봤는데, 이미 지난번에 와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했기 때문에 지금 다시 입원한다 하더라도 크게 달라질 게 없다고 하였다. 입원 한다고 당장 혈관 조영술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어머니는 그냥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혈관 조영술 날짜를 기다리기로 하셨다.


 나는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녹아내리는 듯 했고, 집으로 돌아가면 어머니가 위험하지 않게 잘 돌봐드리고 웬만한 일들은 내가 대신 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머니 또한 못볼줄 알았던 손주들을 내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하셨고, 어느정도 진정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에서 나는 오늘 보았던 또래 소방관, 간호사 분들이 스쳐 지나갔다. 사람의 생명이 오가는 현장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물론 음악학원에 출강하고 있기는 하지만, 오늘 봤던 분들처럼 아무나 할 수 없고 누구라도 힘들어 할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긴장 가운데 일했던 것은 그나마 2년 4개월 장교로 군 복무한 것 밖에 없다. 그것마저도 뭐 남들 다 다녀오는 군대 다녀온 것이고, 지금 나는 과연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며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집에 도착하였고, 예배를 마치고 집에 온 아버지는 어머니를 잘 챙겨주었다.

 나는 잘 준비를 다 하고 방 침대에 누웠다. 오늘 하루 참 정신 없었다고 생각하며, 이전에 엄마를 주제로 작곡한 나의 연주곡을 틀어보았다.

 병원에서는 잔뜩 긴장 하느라 흘리지 못했던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응급실 침상에 무기력히 누워 수없이 주삿바늘을 꽂던 어머니의 모습이 마치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져 가슴이 미어졌다. 소리없이 쏟아지는 눈물에 베개가 잔뜩 젖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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