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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요한 Feb 15. 2024

Ep. 3 세번째 응급실, 지쳐버린 마음

 햇살이 강렬했고, 나무와 꽃들은 모두 푸른 잎을 내느라 바쁜 어린이날이었다. 나는 큰형네 가족을 맞기 위해 아침 일찍 동네 슈퍼에 가서 조카들의 선물을 사왔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는 주섬주섬 요리를 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식탁을 차리며 큰형네 가족을 맞을 준비를 하고있었다. 


 반가운 노크 소리에 문을 열자 형과 형수님, 그리고 귀여운 조카들이 세명이나 쪼르르 집에 들어왔다. 그동안 암흑 속에 있던 듯한 우리집이 순식간에 밝아졌고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손주들을 보며 어쩔 줄 모르는 행복을 누리셨다. 어머니는 만약 어제 입원 했더라면 손주들을 볼 수 없었을 것이었기에, 아마 더 소중한 시간으로 느꼈을 것이다. 

 나는 볼때마다 사랑스럽게 커가는 조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형네 가족을 보낸 후 기절 하다시피 낮잠을 잤다. 그동안 정신적으로 고생을 많이 해서 피로가 누적된 것 같았다.


 어머니는 혈관 조영술 날짜를 기다리는 동안 몸 상태가 많이 좋아지는 듯 했다. 간혹 어머니의 상황을 아는 분들이 나에게 어머니의 안부를 물으면,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몸 밖으로 드러나는 병이 아니기도 하고 어머니 또한 일상생활을 잘 하고 계셨기에 나는 당연히 좋아지고 있는 줄 알았다. 

 며칠이 지난 후 늦은 밤이었다.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어머니 어지러움 증세가 갑자기 또 심하게 왔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아버지가 옆에 있어서 바늘로 어머니의 손을 따주는 등 응급조치들을 하니 진정이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당장 다시 병원에 가봐야 했으나, 대전 선병원 같이 큰 병원은 당일 진료와 당일 입원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는 방법이 있다고 하여, 내일 아침에 응급실을 가기로 하였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 출근하셔야 하기 때문에, 어머니를 병원에 태워만주고 나를 보호자로 보낼 계획이셨다.


 아침이었다. 당연히 푹 잤을리 없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데리고 먼저 차를 타러 내려가 계셨고, 준비 되는대로 나오라고 했다. 나는 너무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섰다. 어젯밤 아버지가 출발하자 했던 시간보다 10분이나 일찍 나왔는데, 아버지는 왜 이렇게 기다리게 하냐며 나한테 괜한 성을 내셨다. 아마 아버지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셨을테고, 이 상황에서 내가 아버지한테 맞선다고 좋을 게 하나도 없기 때문 꾹 눌러 분을 삭혔다.


 선병원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차에 비상등을 켜며 주차장을 들어가셨다. 어머니를 입원 시키기 위해 최대한 위급한 상황으로 연출(?)하는 것이었다. 지금껏 봐온 아버지는 항상 정직한 분이었는데, 어머니를 위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뭔가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응급실에 들어서자마자 또 여러 간호사들이 어머니를 둘러싸며 나에게 상황을 물어왔고, 나는 잔뜩 긴장한 채 최대한 협조를 하려고 했다. 며칠 전 어머니와 함께 응급실에 있던 상황의 반복이었다.

 다행히 어머니는 입원을 할 수 있었고, 2주 후 하기로 한 혈관 조영술을 당장 내일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에 가까운 시골에 계시는 외삼촌이 이모와 할머니를 모시고 대전에 오시기로 했다. 어머니가 혈관 조영술을 받고나서 집에 오면 챙겨줄 사람이 필요해서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의 입원 수속을 밟고 집에 도착하니 너무나 피곤했다. 외삼촌과 이모, 할머니가 우리 집에 도착하면 또 내가 그분들을 챙겨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기에 빨리 집을 나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 피곤한 몸을 못이기고 잠시 거실 소파에 누워있었다. 

 속옷만 입고 누워서 잠에 빠져들 찰나에, 갑자기 현관문 비밀번호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외삼촌과 이모, 할머니가 들어오시는 소리였다. 아무리 친척이라 해도 오랜만에 뵙는 어른신들을 어떻게 속옷차림으로 맞을 수 있는가. 난 재빨리 일어나 내 방으로 달려갔다. 그 도중 엄지발가락이 의자 다리에 매우 세게 부딪혔다. 잠에서 깨자마자 부딪힌 거라 통증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방에 도착하니 통증이 점점 밀려왔다. 그 통증은 마치 나의 정신적 스트레스 같았고, 그 통증으로 인해 방향을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나는 재빨리 옷을 입고 발을 절뚝거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친척분들께 인사를 했다. 이모는 집에 오시자마자 집안일을 벌리며 외삼촌과 할머니의 점심을 차려드렸다. 몸 상태도 안 좋은데다 정신없는 상황까지 되니 나는 극도로 예민해졌다.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필요한 물건들을 지난번 입원 했을 때처럼 챙겨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와 전화를 하며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 둘 바구니에 담고있었다. 잠시 전화를 끊은 사이에 어머니는 또 이모한테 전화해서 물건들을 챙겨달라고 부탁하고 있었고, 이모는 내가 이미 챙겨놓은 물건이 어디있냐고 묻는 상황이 되었다. 아마 어머니는 나한테 부탁하는 것이 미안해서 그런 것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다.


 나는 어머니한테 다시 전화해서 한 사람한테만 부탁하라고, 내가 이미 챙기고 있는데 왜 이모한테 부탁하냐고 짜증을 냈다. 그리고 꼭 필요한 물건만 부탁을 하라고 했다. 지난번에 많은 물건을 무겁게 가져갔지만 사용도 안 한 물건들이 몇 있었기 때문이다. 또 지난번처럼 두번 세번 부탁하지 말고 한번에 잘 정리해서 부탁하라고 했다. 그리고 물건을 부탁하면서 그 물건이 어디있는지 모르는 어머니에게 "엄마도 그게 어딨는지 모르지. 엄마가 평소에 물건 정리를 안 하니까 모르는게 당연한거야"라는 말을 했다. 

 어머니는 "알겠어. 그렇게 짜증내는 소리 듣기 싫어. 이모한테 부탁할 테니까 너는 신경쓰지마"라며 매몰차게 전화를 끊으셨다. 


 다시 얼마 후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는 내일 예정이었던 혈관 조영술을 갑자기 다음주로 미룬다고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외삼촌과 이모, 할머니는 다음주에 다시 오겠다며 시골로 돌아간다 하셨고, 우여곡절 챙긴 어머니의 짐을 외삼촌에게 전달해 병원으로 보내주었다.


 이후 나는 출강하고 있는 학원에 가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수업을 했고, 저녁에는 평소처럼 여자친구를 만났다. 같이 길을 걸으며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다 어머니 얘기를 꺼내는 순간 겉잡을 수 없이 목이 메었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주체가 안 되는 눈물을 몇 분간 쏟았다. 어머니한테 미안한 마음이 터져나온 것이었다.

 나는 구구절절 사과할 힘이 없었고, 어머니도 내 마음을 알고 있을거라 믿었기에 그저 어머니에게 카카오톡으로 우는 이모티콘 몇개만 보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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