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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요한 Feb 15. 2024

Ep. 4 서울아산병원에서

 갑작스럽게 어머니의 혈관 조영술 날짜가 미루어졌고, 어머니는 그 사이 대전 선병원의 소견을 받아 서울 아산병원에서 진료를 보기로 하였다. 시술이 미뤄진 김에 차라리 대형병원을 가서 더 정확한 진료를 받아보자는 것이었다. 

 당시 부모님이 타던 차는 잦은 고장으로 인해 폐차를 시킨 상태여서 서울까지 택시를 타고 올라가기로 하였다.



 아산병원으로 올라가던 날이었다. 아버지와 나는 집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최근 어머니의 투병으로 인해 아버지와 단둘이 시간을 참 많이 보냈다. 어쩌면 이번에는 서울에 올라가 어머니를 입원 시켜드리고 아버지와 처음으로 서울 데이트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아산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새벽 5시, 해도 뜨기 전에 아버지와 나는 선병원에 가서 어머니의 짐을 택시에 한가득 싣고 서울로 올라갈 준비를 마쳤다. 나는 택시 기사님의 조수석에 앉고, 부모님은 뒷자리에 앉아 출발하였다. 분주한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이어폰으로 음악을 몇번 듣다보니 어느덧 서울 아산병원에 도착하였다.


 서울 아산병원 앞에는 초록빛 나무들이 울창했고, 근방에 높게 솟아오른 롯데타워는 서울에 왔음을 실감 시켜주고 있었다. 병원 로비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고, 우리는 앉을 자리를 찾아 진료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대기 도중 어머니의 어지러움 증세가 심해졌고, 이동식 침대를 빌려 어머니를 눕게했다. 덕분에 어머니의 수많은 짐을 이동식 침대 밑 짐칸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붐비는 대형병원에서 이동식 침대를 끌고 다니는 게 여간 쉬운일이 아니었다. 

 오랜 고생 끝에 어머니는 진료를 보았고, 입원실에 딱 한 자리가 남아 바로 입원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병원 시스템에 대해 잘 몰랐으나, 서울아산병원같은 상급병원에서 진료 당일에 입원할 수 있는 것은 기적 수준의 행운이라고 한다. 우리는 오늘 입원이 안 되면 이 많은 짐을 들고 다시 대전으로 내려갈 뻔했다며, 하나님께 감사를 올렸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었다. 환자는 코로나 검사를 받고 음성 판정을 받아야만 입원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장 코로나 검사를 받는다 해도 결과가 나오기까지 최소 8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 곳에서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와, 수많은 짐을 끌고 다니며 어떻게 8시간이나 기다릴 것인가.


 아버지와 나는 침대에 누워 있는 어머니를 끌고 코로나 검사장에 도착했다. 나 또한 보호자로 입원실에 상주하기 위해 PCR검사를 받으려고 했는데, 보호자는 백신을 접종한지 180일 이내여야만 입원실에 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2차 백신을 접종한 후 190일이 경과했기에,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할지 다같이 의논중이었다. 

 그 사이 어느 한 직원이 갑자기 우리한테 "얼른 오셔서 절차를 밟으셔야죠"라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얘기하였다. 아버지는 절차를 밟기 위해 성큼 데스크로 갔고, 가자마자 그 직원이 "거기 그렇게 가만히 서계시면 어떡하자는 거예요 검사를 받으실 거면 여기로 오셔야죠 "라며 아버지한테 훈계하듯이 얘기를 했다. 나는 그 직원의 말투가 굉장히 공격적으로 느껴졌지만, 어머니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되는 위험한 상황이었으므로 좋게 넘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미 마음이 굉장히 불편해진 상태였고, 그 직원에게 “좀 더 친절하게 말해도 좋을 텐데”라며 충고하셨다. 하지만 그 직원은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실내 에어컨 소리 때문에 큰 소리로 말한 것이라며 변명만 했다. 단지 큰 소리로 말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현장에 있던 나와 어머니 모두 그 직원의 공격적인 말투에 당황했고, 마치 우리가 무엇을 잘못한 사람들인 것처럼 느껴졌다. 

 아버지는 그 직원에게 불만을 얘기하다 분을 참지 못해 결국 큰 소리를 내셨고, 어머니는 그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아 체온이 올라가고 심한 두통까지 일어나는 위험한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도 그 직원은 아버지가 오해한 거라며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가 이유도 없이 화내는 무례한 사람인 양 보안팀을 부르겠다며 위협하였다. 그 말에 아버지는 더욱 분노하셨고, 어머니까지 아버지에게 그만하라며 소리지르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두 사람을 진정 시키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보안팀 직원들이 출동하여 차분하게 질문하며 공감해줌으로써 아버지를 진정시켰고, 상황은 겨우 종료되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아픈 상황에서까지 분을 참지 못하는 아버지가 미워 "당신은 화내는 거 병이야"라고 하였다.


 PCR검사실에서 원활하게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 직원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검사실에 우리를 제외한 대기자는 단 한 분이었고, 혹여 업무에 방해가 되었다 하더라도 환자를 보살피는 보호자에게 호통치듯이 말하는 태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의료진들이 굉장히 큰 업무 부담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 또한 아픈 어머니를 돌보느라, 67세에 재임용된 직장에서 중요한 업무까지 수행하시느라 심적, 육적으로 굉장히 힘든 상태다. 게다가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먼 길을 왔고, PCR검사 결과가 통보 되기까지 쉴 곳도 없이 8시간 이상 입원을 기다려야 한다는 규정으로 인해 마음이 상해 있던 터에 그 직원의 무례한 태도는 심적, 육적으로 지쳐 있는 아버지의 이성을 잃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어느 식당이나 병원 등을 방문하더라도 직원에게 화를 낸 적이 단 한번도 없는 사람이다. 혹여 직원이 실수를 하거나 뭔가 부족한 게 있더라도 절대 화를 내지 않고 늘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번 일의 경우에는, 어떤 보호자라 하더라도 그 직원의 공격적인 태도를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와 나는 이동식 침대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끌고 쉴만한 곳을 찾다 다행히 병원 로비 구석에 사람들이 잘 오가지 않는 공간을 찾아 정착했다. 아버지는 너무 피곤하여 잠시 혼자 쉬러가겠다고 하셨고, 나는 그곳에서 어머니의 식사 대용으로 생식을 두유에 타서 드렸다. 어머니는 음식을 먹으면 어지러운 증세가 온다고 하여 한 달 넘게 밥도 제대로 못먹고 부드러운 과일과 생식만 드시고 계셨다. 

 시간이 조금 지나 어머니는 자신의 병원카드가 없어졌다며, 아버지에게 받아오라고 부탁했다. 아버지는 멀찍이 자리에 앉아서 졸고 계셨다. 평소에는 매일 일하다가 하루 휴가를 내 새벽부터 여기까지 왔고, 아까 전 불친절한 직원과의 사투까지 있었으니 얼마나 피곤할만 한가. 앉아서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꾸벅거리는 아버지를 보니 마음이 너무나 짠했다. 나는 아버지를 깨워 병원카드를 받았고, 다시 병원 로비 구석에 누워있는 어머니에게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잠에서 깨어 어머니에게 오셨고, 오자마자 어머니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까 전 코로나 검사실에서 자신이 화낸 것은 누구라도 화날만한 일인데, 그 상황에 화를 낸 자신이 병이라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고 화를 냈다. 지금 이 상황이 누구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어떻게 그런말을 하냐고, 그리고 지금 자신이 늦은 나이에도 힘들게 일하는 이유가 누구 때문인데 그런말을 할 수 있냐고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과거 어머니의 실수로 인해 가정 경제가 어려워졌기 때문) 

 아버지는 겉잡을 수 없이 지나친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무기력하게 누워 아버지의 심한 말을 듣고있는 어머니를 위로하고, 화를 내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며 달래주느라 계속 왔다갔다 했다. 사람들은 환자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는 보호자를 보며 뭐라고 생각할까 정말 창피하기도 했다.

 나는 이 상황을 종료시키기 위해 30분 간 있는 힘을 다해 긍정적인 말을 하며, 두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결국 어머니는 침대에서 일어나 아버지에게 사과하였고, 나는 아버지의 팔을 들어 어머니를 안아주게 했다.


 아버지는 다음 날 출근을 해야했기에 해 지기 전에 먼저 내려가셨고, 나는 학원 일이 당장 없었기에 서울에 며칠 더 있으며 병원 주변에 있기로 했다. 오후 8시가 다 되어서야 어머니의 코로나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고, 나는 어머니를 이끌고 입원실에 잠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본 입원실의 간호사들은 굉장히 친절했다. 오늘 코로나 검사실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어머니가 지금 스트레스에 취약하니 오늘 밤은 특별히 관심 부탁 드린다고 얘기했다. 내 이야기에 공감해주며, 능숙하게 입원 수속을 밟아주는 간호사님께 정말 고마웠다.


 나는 한 가득 싣고 온 어머니의 짐을 차곡차곡 정리해주었고, 대전에서부터 가져온 과일 반찬 등을 냉장고에 넣어주었다. 어머니의 주변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어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어머니 보다 위독하신 분들이 계신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마비가 되셔서 배설활동에 도움을 받으시는 분도 계시는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가 바로 쉴 수 있게 모든 세팅을 마친 후, 어머니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해준 뒤 병원을 떠났다.


 지금까지 대전에서 3번의 응급실을 거치고, 서울 아산병원에 와서 입원하기까지 정말 다사다난했다. 나는 아산병원 근처의 한강 길을 걸으며 오늘 하루 힘겨웠던 일들을 훌훌 털어버렸다. 힘든 일들을 모두 이겨내고 어머니를 입원 시킨 것이 너무나 뿌듯했고, 이제부터는 일사천리로 어머니의 병이 치료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나는 근처 모텔에 도착하여 어머니에게 연락을 하였고, 어머니는 오늘 나에게 고생했다며 애정 가득한 문자를 보내셨다. 어머니는 이제 안정을 취했다고 하셨고, 나 또한 안심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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