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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요한 Feb 15. 2024

Ep. 5 수차례의 희망과 좌절

 전날 밤 병원 근처 모텔에서 잠을 자고 눈을 뜨니 거의 11시가 다 되어갔다. 오늘은 어머니와 같이 점심을 먹은 후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병원 앞을 산책 시켜드릴 계획이었다. (원래는 환자가 입원실 밖으로 나가면 안 되지만, 잠시 나가는 것은 암묵적으로 허용되는 것 같았다) 나는 늦게 일어난 탓에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는데, 혈관 조영술을 오늘 오후에 하게 되어서 그 전까지 금식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밥을 먹고 산책 시켜드리려는 계획은 틀어졌지만, 어짜피 해야할 시술을 빨리 하게 된 것에 오히려 감사했다. 나는 잠시 어머니의 얼굴만 보고 병원 근처 카페를 가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아산병원은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했고, 그 가운데 환자복을 입고 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대전 선병원에서부터 느낀 거지만 어머니는 하얀 환자복을 입은 모습이 참 귀여우시다. 어머니는 체형이 동글동글한 편인데 핏이 널널한 환자복을 입으니 더 보기 좋게 동글동글해 보였다. 게다가 병원 생활로 인해 한 달 넘게 햇빛을 받지 않아 얼굴까지 뽀샤시해졌다. 그리고 아프기 시작한 후로부터 정신적으로 약간 나를 의지하는 것이 느껴졌기에 어머니가 애기 같고 귀엽게 느껴졌다.

 나는 어머니에게 시술이 잘 될 것이라며 위로를 해주었고 병원 주변에서 계속 기도하고 있을테니 안심하시라고 하였다. 이후 병원 주변에 한 스터디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나는 원래 창가쪽 자리를 좋아하지만 그 날은 왠지 더욱 창가 자리에 앉고 싶은 생각이 들어 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창문 너머 풍경을 보니 아산병원이 바로 앞에 보였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났다. 이 큰 병원에서 어머니가 진료 당일에 입원을 한 것과, 입원 바로 다음날 시술을 받게 된 것과, 시술 받는 내내 병원을 바라보며 기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느꼈다. 비록 고난까지도 허락 하시지만(삶을 살다보면 불가피한 고난들), 그 가운데에서도 한줄기의 빛을 늘 보여주신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나는 공부를 하다, 어머니가 시술실에 들어간다는 카톡을 보고 속으로 기도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의 마음을 남겨놓고 싶어 책 말미에다 기도문을 적었다. 




 엄마를 위한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치유하시는 하나님, 위로하시는 하나님. 우리 엄마의 아픈 부위를 깨끗하게 하여주사 온전한 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원합니다.

 엄마가 더욱 담대함과 평안함으로 시술을 받게 하여주시고, 아픈 부위 없이 잘 견디게 하여주옵소서. 엄마의 몸을 고치는 의사들의 손길을 하나님께서 주장하시고 그들의 선한 일에 복을 내려주옵소서.

 그 시술실에 들어가기까지의 모든 과정도 인자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며 감사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고 인도해주신 시술이니, 구하지 않아도 염려하지 않아도 무사히 마치게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산병원에는 진료를 받고, 입원을 하고, 수술을 받는 것이 어려운 환자들도 있습니다. 그 수많은 환자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육체 가운데 신음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어 주시고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회복하심이 있게 하여주옵소서. 또 그들이 고통 중에 하나님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도록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 엄마를 사랑해주시고 늘 인도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귀한 딸 저희 엄마를 치유해주옵소서. 하나님의 강하며 부드럽고, 섬세한 그 손길로 엄마를 치유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기도를 세밀히 들으시며 응답하시는 주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




 기도문 마지막에 느낌표를 쓰자마자 자리에 있던 컵의 얼음이 녹아 '달그락!'소리가 났고, 동시에 어머니가 시술을 마치고 나왔다는 카톡이 왔다. 가족 톡방에 있던 아버지는 이제 곧 퇴원할 수 있겠다며, 나에게 어머니를 모시고 대전에 내려갈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혈관조영술은 혈관 내부에 있는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검사이며, 결과는 내일 알 수 있다고 했다. 보통 아산병원에서 혈관조영술을 받으면 대부분이 얼마 안 지나 약 처방만 받고 퇴원을 한다고 한다. 어머니는 시술 내내 의사분들이 굉장히 여유로워 보였다고 했고 시술을 받은 뒤 몸이 가벼워진 것 같다고 했기에 우리 가족은 모두 안심했다.


 그날 밤 나는 가벼워진 마음으로 서울의 밤을 누볐다. 병원 인근에 있는 석촌호수에서 산책도하고, 롯데타워 바로 앞까지 가서 사진을 마구 찍으며 대전도시남자(촌티아님ㅎ) 티를 냈다. 그 날은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병원 인근 고시텔을 찾아 짐을 풀었고, 마침 주변에 작은 공원이 있어 산책을 할 수 있었다. 공원에서는 아산병원이 멀찍이 보였고, 저곳에서 주무시고 있을 어머니를 생각 해보았다. 나는 다시 고시텔에 들어가 비좁은 침대에서 낡은 선풍기 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었다.




 날씨도 기분도 좋은 아침이었다. 나는 어제 갔던 병원 인근 스터디카페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오늘은 스터디카페에 짐을 맡겨놓고, 가벼운 몸으로 서울을 구경할 생각에 신이 나있었다. 


 스터디카페 앞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니라 간호사가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혈관 확장술(스탠트삽입술)을 받아야하는데, 이 시술을 받게 되면 바로 중환자실로 이송되기 때문에 반드시 간병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간병을 하기 위해 당장 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지난번에 들었던 병원 규정대로 나는 백신 3차를 접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입원실은 물론 중환자실에는 당연히 들어갈 수 없었다. 

 어머니의 시술은 약 5시간 정도 남기고 있었고, 시술을 시작하기 전까지 급하게 간병인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간병인 업체 전단지를 찾아 모든 업체들에 전화를 돌렸다. 그러나 지금 당장 와줄 수 있고, 단 이틀만 간병을 해줄 수 있는 분들을 찾기는 정말 어려웠다. 결국 이틀 간병에 삼일 간병비를 내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간병인을 구하게 되었다. 어머니께 전화하여 간병인을 구했으니 안심하라고 한 후, 시술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 얼굴을 보자고 했다.


 어머니는 수액 바늘을 꼽고있었고 소변줄까지 연결하고 있었다. 시술을 받고나면 몇시간을 꼼짝없이 누워있어야하기 때문에 소변줄을 꼽았다고 한다. 게다가 시술을 위해 평소보다 약을 많이 투여해서 몸에 힘이 없다고 했다. 어머니의 표정은 걱정이 가득해보였다. 어머니가 아무리 신앙이 좋다한들, 인간이기에 아무래도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어머니를 위로해줄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고 그저 오늘도 곁에서 기도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술을 두 시간 정도 앞두고 있을 무렵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갑자기 시술 일정을 다음주로 미룬다는 것이었다. 나는 연락된 간병인님께 재빨리 전화하여 오늘 시술의 취소를 알렸고 거듭 죄송하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오늘 시술을 위해 약도 많이 드시고 몸에 이것저것 많이 꽂은 채 긴장을 하고 있던 상황에 갑자기 시술이 미뤄지게 되어 낙담했다.

 그래도 나는 이틀 연속 시술을 받는 것보다 안정을 취하고 천천히 받는 게 낫겠다며 어머니를 위로하고 대전으로 내려가기를 결심했다. 어짜피 다음주까지 내가 서울에 있는다고 도움될 게 없고 주말에 대전에서 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전에 내려온지 나흘 정도 지났을까, 어머니는 드디어 기다리던 시술을 받으러 들어가셨다.(새롭게 간병인님을 구함) 나는 어머니가 오랜 기간 집을 비워 더러워진 집을 청소하며 어머니의 시술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다. 청소를 마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어머니의 연락을 보았는데, 시술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혈관이 너무 얇아 시술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대전 선병원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몇번이나 희망을 가졌고, 몇번이나 좌절을 했는가. 고작 이 실패의 결말을 위해 그 긴 시간 동안 희망을 찾고 또 찾았던 건가. 차라리 계속 힘들기만 할 것이지, 두 달 가까이 긴장과 이완이 수차례 반복되니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희망도 절망도 어떤 감정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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