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이야기 - 2
2019년 난 무너졌다.
회사에서도 연인에게도 난 나쁜 사람이었다.
무너지고 보니 사람들 얼굴이 보였다.
다 늙었다.
난 모니터만 바라보던 사람이라
그들이 늙었는지도 몰랐다. 바보 같다.
내가 일을 많이 하고 많이 알면
그들과 나이상관없이 월등하다 믿었다.
나보다 일을 모르면 내 아래라 생각했고
그렇게 나이며, 직급이며 무시하고
내가 만든 세계에서 일짱이 되어 살았다.
내 잘못된 가치관의 세상에서 끌어들인
내가 만든 상처들을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화풀이했다.
내 옆에 가장 붙어있던 나의 상사는
그런 나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까.
나는 그것을 왜 마지막이 되어서야 알게 되어
무릎을 꿇어도 용서받을 수 없었을까.
그녀에게는 매일이 죄스럽다.
나와 가장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더 큰 상처를 받고 험한 시간을 보냈으리라.
회사를 그만 두기로 마음을 먹고
일 년을 마지막 하루처럼 살았다.
매뉴얼을 만들고 또 만들었다.
내가 그만두더라도 내 다음 사람이
나와 같은 고통을 겪지 않았음 했다.
내 죄를 용서받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어쩌면 면죄부를 얻기 위해 살았을지도.
그간 내가 행했던 한심한 행동들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날 사랑하기로 마음먹으니
남도 사랑하게 되어
내가 했던 잘못된 행동들이
나에게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난 그 쓰나미에 먹혀
해저 밑으로 가라앉아 버렸고
살려고 살려고 위로 헤엄쳐갔다.
처음부터 다시 하려고 마음먹으니
거꾸로 되감기 하는 것처럼
왜 그때 그런 일들이 벌어졌는지 이해가 되었다.
영화 '나의 문어선생님' 초반에서
잠수부는 웬 조개와 소라껍데기를
둥그렇게 감싸고 있는 문어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뭔지 모르고
문어와 함께 애착을 형성하고
문어의 고통과 성장의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어느 날 문어에게 큰 상처를 줬었던
문어의 천적 파자마상어가 나타났고,
일전에 그 파자마상어에게
한쪽 발을 뜯긴 적이 있던 문어는 열심히 도망쳤다.
도망친 문어는 갑자기 조개가 많은 곳으로 가서
빨판으로 조개를 하나씩 하나씩 모아 자기를 위장했다.
이 장면이 잠수부가 처음 문어를 발견했을 때의
그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 장면을 보고 나니 직장에서의 일들도
모든 것의 원인과 결과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분들은 원래 알던 것들을 내려놓고
일을 하나하나 기초를 배우고
지켜야 할 사람이 있고
생존하기 위해 그랬던 것이다.
난 기초를 배우고 열심히 노력하는 분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와 시련을 줬다.
나보다 인생을 몇십 년을 더 산 그분들에게
내가 받은 상처들을 어떻게든 풀려고
떼쓰고 화를 냈던 것이다.
조개껍데기로 위장한 문어는 결국 들켜버렸다.
잠수부는 도와주고 싶었지만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문어는 다시마 속으로 이리저리 도망쳤다.
그러다 문어는 성장을 했다.
자신을 따라오는 문어에게
먹물을 내뿜으며 도망치다가
파자마상어의 머리 위에 올라탔다.
파자마상어는 문어의 냄새를 맡고
이리저리 찾아다니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포기하고 돌아섰다.
문어는 상어 머리에서 슬며시 내려와
유유히 헤엄을 쳤다.
그렇게 문어는 성장을 하고는
알을 낳고 새끼를 번식하며
생을 마감한다.
성장했던 그분들에게는
더 이상 내 떼가 먹히지 않게 되었다.
나는 내가 파놓은 구멍에 빠져버렸고
그분들은 그분들이 피땀 흘려 만든 세상으로
등 돌려 나를 떠나가 버렸다.
생애의 저녁에 이르면 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놓고 심판받을 것이다.
- 알베르 카뮈 -
난 저녁에 심판을 받고 회계의 길로 들어섰다.
심판뒤엔 사랑만이 남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더 사랑하기로 했다.
나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기로 했다.
그것이 내 몸을 치료하는 방법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