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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만 Jul 30. 2021

<화가> Chapter_2 아뜰리에 회상 편

-소설-

Chapter_2 아뜰리에 시절 회상 편


앙리는 아뜰리에 시절의 기억이 피어오른다..


"댕~댕"정오를 알리는 생 카트린 성당의 종소리가 옹플레르의 항구에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항구도시의 성당답게 투박한 손을 가진 선박 제조업자들의 손길이 여실히 반영되어 있다. 배를 뒤집어 놓은 듯한 아치형 천장의 목조 건축물 내부, 은은한 나무향으로 공간을 농밀하게 채우고 있다. 그 향과 형형색색의 스테인글라스에 투과된 빛, 그리고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작업 중이던 앙리의 세 감각을 자극했고 그 결합으로 인해 묘한 내적 경건함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사실 오늘은 아뜰리에에서 꽤나 명망 있는 모델을 섭외해 누드화를 그리는 일정이 잡혀있다. 앙리는 아뜰리에 동료들 사이에서도 화제인 그 모델을 화폭에 담고 싶다는 욕구가 커 내심 고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엊그제 아뜰리에 수장인 외젠이 생 카트린 성당의 스테인글라스 보수작업을 갑자기 의뢰했다. 아마 옹프레르의 교구장과 연줄이 닿아있었기에 요청을 받았으리라.. 아뜰리에 오픈 초기와 달리 볼륨을 키우는 것에 많은 관심을 가진 그는 근래 대외활동이 부쩍 많아졌다. 이 의뢰는 그 일련일 것이라 짐작했다.

앙리는 갑작스러웠지만 그의 정중한 부탁으로 인해 성격상 거절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개인적으론 몹시 아쉬워하던 찰나였다.

그러나 텅 빈 예배당, 홀로 성당에 와서 보수작업을 진행을 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얻게 되었다. 바로 뜻밖의 유사 영적 체험이다. 이것은 그 모델을 화폭에 담지 못한 상실감을 상회하고도 남았다. 왜냐하면 차후 작품을 만들 때 꽤나 유용한 정신적 태도를 얻었기 때문이다. 가령 물아일체의 경험 그런 것이랄까? 세상의 온갖 소음과 잡념으로부터 차단되어 대상과 나만을 존재시킴으로써 온전히 창조력의 물꼬를 트는 것이다. 과거에도 종종 몇 번 그런 경험을 했었으나 지금과의 가장 큰 차이는 이 오롯한 행위의 당위성을 절대적 존재로부터 부여받은 느낌이었다. 그 정신적 충만함은 이내 육신으로 흘러내려왔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가빠지고 이내 입가에 미소가 서린다.


- 세상의 온갖 시련과 잡음에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너는 마땅히 그러하라. 그게 내가 너에게 부여한 존재 이유이니라 -


마치 계시를 받은 듯한 느낌에 아주 충만해져 있는 상태다. 성모상 좌측 벽면에 간이용 사다리 이동시켜 놓은 후 올라가던 찰나 입구 쪽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허허.. 앙리 벌써 이만큼 작업했구먼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닌가? 욕심쟁이 외젠이 크게 기뻐하겠어.. "

뒤를 돌아보자 아틀리에 수습 생활을 같이하고 있던 테오였다. 검정 프록코트의 매무새를 한 번 정리하곤 앙리를 향해 다가갔다.

"이 경건한 공간에 홀로 있다 보니 작업만 하게 되어서 그런가 보네"

"거 참 사람이 바르다니까? 나였으면 외젠이 핀잔을 주더라도 못하겠다고 했을 텐데 말이지"

털털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온 그, 마리아상 뒤쪽부터 시작된 스테인글라스의 벽면을 둘러보았다. 투과된 빛에 의해 눈살을 살짝 치푸리곤

"작업도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점심이나 먹으러 가세. 이 근처 괜찮은 집을 발견했단 말이지? 경치도 좋고 자네에게 알려주고 싶어 아주 근질근질했다니까~ 그리고 할 말도 있고.."

"음... 때마침 배도 고프고 하니 그렇게 하세... 그런데 그 할 말이란 게 뭐야??"

멋쩍은 웃음을 짓는 테오

"음.. 그건 거기 가서 말하겠네"

생 카트린 성당 입구를 나와 항구 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갈로 된 대로변을 잠시 걷다 비탈진을 골목길로 들어갔고 이내 작고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담들처럼 늘어져 있었다. 건물 높이에 비해 협소한 골목길에는 정오의 빛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고 테오와 앙리의 어깨까지만 머물러 그들과 함께 동행했다. 골목의 종착점에 이르러서는 다른 햇살이 입구를 밝히며 눈부시게 마중 나와 있었다. 그들의 난해한 예술 대화를 엿듣던 햇살은 이내 입구의 햇살과 상봉했다.

옹플레르 선착장의 깊은 내부 U자형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의 가게였다. 오랜 세월 동안 햇살과 함께 했음의 징표로 노란색 바람을 얻은 간판은 포근함으로 그들을 맞이한다. 햇살이 좋은 날씨라 가게의 손님이 즐비했다. 눈치껏 실내에는 자리가 날 것 같지 않아서 테라스에 자리를 잡기로 했다.

프록코트를 의자 뒤에 걸치면서 테오는 말했다.  

"가게 위치 좋지? 바로 옆이 바닷가라 경치가 너무 좋더라고 여기는 이것저것 먹어봤는데 부야베스가 일품이야"

앙리는 주변 테이블의 음식들을 슬그머니 보더니

"부야베스 맛은 거의 비슷비슷하던데.... 흠 그럼 그걸로 먹어볼까?"

정오의 선착장에는 이른 새벽에 출항했던 어선들이 돌아왔고 어부들이 분주하게 수확한 물고기들을 적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위 푸른 청아한 하늘에 갈매기들이 원형을 그리며 돌고 있다. 퍽 감상적인 전경이다.

"사실 해질녘 노을질 때 쯤와야 정수를 느낄 수 있는데.. 그때 되면 르노 아뜰리에 사람들이 이젤을 들고 와 그림을 그리더라고 꽤나 재미있는 광경이지 뭐.. 여하튼 아쉬운 대로 지금 왔네 "

"르노 사람들이 여기서 작업을 한다고? 고리타분한 그림만 그리더니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나 보지?... 재밌구만.."

"그랬나 보지 요몇년간 그리 평판이 좋지 않았잖아. 그나저나 디저트로는 수플레를  추천하네 매우 부드럽다니까~ 아주 그냥 혀끝에서 녹아내린다네"

"어색하게 오늘따라 부쩍 말이 많아... 이쯤이면 걱정이 될 지경이야. 허허 대체할 말이란 게 뭔가?"

정적이 잠시 머무르다 테오는 앙리의 눈을 잠시 응시했다. 그리곤 무거운 입을 뗐다.


"많은 고민을 해봤거든... 자네.. 코라 말이야. 내가 만나봐도 될까?"


앙리는 두 귀를 의심했다.

테오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앙리가 그녀를 연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왜냐하면 오랜 시간 그에게 코라에 대한 감정의 변화 상태를 많이 공유하고 상담했기에...

찰나의 정적이 맴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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