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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가진 그리고 떠오르는 브랜드, 아식스

by 찰스킴

1. 아식스의 시작, 오니츠카 타이거

1977년 아식스가 생겼지만, 사실 아식스의 시작은 오니츠카 타이거입니다. 오니츠카 타이거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설립됩니다. 일본은 세계대전에서 참패한 후 나라를 재건하고 있었습니다. 오니츠카 타이거의 설립자 오니츠카 키하치로는 원래 군장교였습니다. 하지만 패배 후에 먹고살 다른 것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는 친구인 호리 고헤이를 찾아가 조언을 구합니다. 당시 교육 관련 사업을 하고 있던 호리 고헤이는 청소년을 위한 스포츠 신발 브랜드 사업을 논의합니다.

대뜸 관련 없는 사업에 오니츠카는 놀랍니다. 호리 고헤이는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면 좋을 것이다. 현재 일본의 미래는 아이들에게 달려있습니다. 아이들이 건강할 수 있도록 신발을 만들어 봅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오니츠카 키하치로의 본격적인 운동화 만들기가 시작됩니다.


2. 난이도 상 문제부터 풀기

오니츠카 타이거가 생겨나고 처음 발매된 신발은 농구화였습니다. 다른 운동화에 비해서, 더 복잡하고 어려운 농구화를 초짜인 오니츠카가 도전한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어려운 문제부터 풀자' 저는 수학 공부를 할 때 어려운 문제부터 풀고자 합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그것보다 난이도가 낮은 건 금방 눈에 들어옵니다. 오니츠카 타이거도 똑같았습니다. 어려운 농구화부터 해결한다면 다른 운동화는 금방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45623.PNG 오니츠카 타이거의 농구화를 들고 있는, 창업자 오니츠카 키하치로

오니츠카 키하치로는 문어 샐러드를 먹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문어 빨판 같은 밑창을 만든다면 턴이나 방향 전화에 더 자유로운 농구화를 만들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죠. 그렇게 청소년 농구팀이 이 신발을 신고 우승하게 됩니다. 또한 1956년에는 올림픽 국가대표의 신발로 채택되었습니다. 이때 호랑이의 강한 모습을 담아 브랜드 이름을 오니츠카 타이거로 정했습니다.

러닝화도 만들기로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타비 운동화는 오니츠카 타이거가 원조입니다. 일본의 타비 양말에서 영감을 얻어 러닝용 타비 운동화를 처음으로 오니츠카 타이거가 만들었습니다. 또한 다른 러닝화도 만들었는데, 러닝화가 모두 장거리 마라톤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신발을 신기만 하면 물집이 잡혔습니다. 이런저런 방법을 연구하던 중 오니츠카 키하치로는 물집이 잡히는 원인부터 알아보고자 의사를 만납니다. 그렇게 물집의 원인이 러닝 중 발생하는 마찰에 의한 열과 충격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인을 알게 되었으니 해결법 또한 간단했습니다. '열을 줄이면 되는 것' 그래서 신발에 몇몇 구멍을 뚫어서 열을 배출할 수 있도록 개발했습니다.

345.PNG 오니츠카 타이거의 매직 러너 신발

그렇게 개발된 신발을 신고 1960년 마라톤 대회에서 메달을 수상하자, 오니츠카 타이거의 신발이 전 세계에 알려집니다. 이때 한 미국의 청년 사업가가 찾아와 오니츠카 타이거의 미국 판매권을 달라고 합니다. 그게 현재 우리가 가장 많이 아는 브랜드 나이키의 시초였습니다. 그 청년 사업가가 나이키의 창립자 필 나이트였습니다.


3. 코르테즈와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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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식스의 타이거 코르세어와 나이키의 코르테즈

나이키의 코르테즈는 익숙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왼쪽 아식스의 신발과 닮지 않았나요?? 사실 로고를 제외하면 두 모델은 거의 같습니다. 나이키와 아식스가 계약을 할 당시, 필 나이트의 사업 동료 빌 바우먼 코치와 아식스가 공동으로 개발한 모델입니다. 지금 신발 옆에 붙어 있는 아식스의 로고에는 기능이 숨어 있습니다. 신발끈 부분부터 밑창까지 내려오는 선 2개는 발등을 조여주고, 신발 뒤축부터 중간까지 있는 선 2개는 신발의 뒤틀림을 잡아줍니다.

두 신발 간에는 기나긴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처음에 코르테즈의 이름은 'TG 멕시코'였습니다. 그러다 멕시코의 문명인 아즈텍이 신발 이름이 됩니다. 하지만 이미 아즈텍이라는 이름의 신발이 아디다스에 있었고, 아즈텍 문명을 멸망시킨 정복자 '코르테즈'로 바뀝니다. 후에 오니츠카 타이거와 나이키는 결별하면서 판매권을 갖고 법정 싸움을 합니다. 두 회사 모두 포기가 어려웠습니다. 법정은 양쪽의 상품 모두를 인정하나 이름은 나이키의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결국 오니츠카 타이거가 비슷한 이름인 코르세어로 짓게 됩니다.


4. Anima Sana In Corpore Sano

오니츠카 타이거는 다른 스포츠 브랜드와 합병합니다. 그리고 이때 회사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자신에게 영감을 주었던 호리 고헤이의 라틴어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앞글자를 따서 지금의 아식스가 탄생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식스는 세계적인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점차 밀리게 됩니다.

그리고 아식스는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젤'을 도입합니다. 지금도 아식스의 신발 대부분의 이름에 젤이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이키의 에어 맥스와 비슷한 역할을 했습니다. 젤-라이트가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미국의 러닝 붐에 잘 맞았던 것이었습니다. 어려웠던 상황을 반전시킨 만큼 아식스의 젤 사랑은 대단했습니다. 실제로 젤은 신발 과학에 적합하지 못했습니다. 충격 흡수는 대단했지만 쿠셔닝 측면에서는 부족했죠. 근데 다른 신발들에 비해서 아식스가 정말 정말 편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아식스의 미드솔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식스는 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웬만한 모든 신발에 젤을 조금이라도 넣어서 이름을 붙여 판매하곤 합니다.


5. 오늘날의 아식스

대중에게 아식스의 위상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아저씨들이 신는 신발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점차 어글리 슈즈, 일상복과 아웃도어 브랜드를 함께 입는 고프코어룩, 테크 웨어가 대중 패션으로 자리 잡으면서 아식스를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기에 보답이라도 하듯 아식스는 아더에러, 키코와 협업하여 좋은 신발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그리고 뉴발란스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아식스의 이러한 선전은 신발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대체제로 다가와 매우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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