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전장
발자국 없는 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새벽
당신은 홀로, 외로이 걸었습니다
내 이름 하나 부르지 못하는 세상에서
숨결마저 삼키며
눈과 흙이 뒤섞인 들판
총성은 산을 울리고
오른쪽 고막은 터져 사라지고
떨어져 나간 손과 발은
서서히 식어 갔습니다
마지막으로 매어준
딸아이의 머리끈
아버지는, 그 끈이
고사리 손안에 담겨, 밤새
눈물에 젖을 줄 몰랐습니다
열 살, 그 어린 전령병
여린 주먹 속 편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굳게 닫혀
풀리지 않았습니다
닭 한 마리로
쉰 명의 저녁을 만든
주름진 손
국물의 짠맛을
소금 대신, 눈물로 맞추었습니다
얼음물속에서, 그릇을 씻던 여인
언 손가락이, 깨진 그릇보다
먼저 부서졌습니다
주점의 웃음
술잔 위로 번진 그 웃음 속엔
날카로운 질문과
목숨값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나라를
다시 찾겠다고
모든 것을 내어 놓은 사람들
그리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내 집도, 학교도 갖지 못한 채
모든 그림자를, 홀로 지고 살아온
그들의 후손들
우리는 지금, 그들과
같은 시대를 걷고 있습니다
기록에서 사라진 이름들
그 고귀한 뜻은
얼어붙은 땅속에서
아직도 새싹처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발밑의 길
당신들이 남기고 간
발자국 없는 길
오늘
광복의 빛 아래서
우리는 두 손 모아
고개를 숙입니다
발자국 없는 길을, 홀로
걸어간
모든 이들의 이름들
얼어붙은 땅속에서, 첫 빛이 번지게 하리니...
단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찾아 부르겠습니다
소리 높여 부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