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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해부학

나는 어떻게 마음이 되었는가?

by 영업의신조이

7화.

감정 _ 마음이 색을 입는 순간



감정은 마음이 세계를 만나는 순간 차려입는 색과 같다. 감각이 세상을 만지는 피부라면, 감정은 그 피부 아래에서 은밀히 피어오르는 빛이다.

느낌이 떨림이라면, 감정은 그 떨림이 결을 이루며 온 존재를 물들이는 파장이다. 감정은 단순한 흔들림이 아니라, 마음이 반응하는 방식이자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정서의 언어다.

우리는 감정을 겪으며 살아 있고,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존재의 진실을 증명한다.


감정은 단지 기쁨이나 슬픔, 분노나 사랑 같은 이름 붙은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순간들이 내면을 스치고 지나간 흔적이며, 기억과 감각과 생각이 얽혀 빚어낸 복합적인 빛의 파동이다.

감정은 흘러가고, 쌓이며, 스며들어 마음의 무늬를 바꾼다. 어떤 감정은 순간의 불꽃처럼 터져 나오지만, 또 어떤 감정은 오래도록 가라앉아 결국 마음의 구조를 바꾸어 놓는다. 감정은 그 자체로 구조이며, 동시에 구조를 재편하는 힘이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에서 달리다 넘어져 무릎이 까진 적이 있다. 흙 묻은 손으로 얼굴을 닦으며 울음을 참으려 했으나, 멀리서 엄마의 얼굴이 보이는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 눈물은 단순한 통증 때문이 아니었다.

위로받고 싶다는 갈망,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

나약함이 수용될 수 있다는 용서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었다.

감정은 이처럼 단일한 사건에서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결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자라난다.


감정은 몸과 마음 사이를 오간다.

떨리는 손끝,

조여드는 가슴,

목이 메이는 순간,

눈가에 맺히는 눈물.

감정은 물리적 반응이자 생리적 작용이며,

동시에 가장 깊은 정신의 언어다.


기쁨이란 웃는 표정이 아니라 마음이 빛으로 물드는 상태이고, 슬픔이란 눈물이 아니라 존재가 무너져 내리는 감각 그 자체다.

감정은 겉으로 드러나는 반응이 아니라, 내면의 구조가 일으키는 진동이다.


감정은 언제나 기억과 얽혀 있다.

같은 음악,

같은 냄새,

같은 장소가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그것들이 개인의 기억과 만나기 때문이다.

첫사랑의 순간을 소환하는 음악, 가을바람에 실린 이별의 추억처럼 감정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공명한다. 그래서 감정은 지금 이 순간이면서 동시에 기억의 회귀다.

감정은 시간을 잇는 다리이다.


나는 대학 시절,

늦은 밤 우산도 없이 빗속을 걸은 적이 있다. 특별히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았지만, 빗방울이 얼굴을 때릴 때마다 어딘가에 쌓였던 감정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눈물이었는지 빗물이었는지 모를 그 흐름 속에서 나는 오히려 가벼워졌다. 감정은 무너짐이자 동시에 새로운 정리의 시작이다.


감정은 반드시 언어로 표현될 필요가 없다.

설명할 수 없는 울컥함,

이름 붙일 수 없는 안도,

순간적으로 터지는 웃음과 분노는 언어 너머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감정은 삶의 본질을 가로지르며, 존재가 스스로를 증명하는 방식이 된다. 우리는 생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으로 살아 있음을 체감한다.


때로 감정은 순간 안에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조건이 완벽히 맞는 소개팅 자리에서 단 몇 분 만에


“이 사람은 아니다”


라는 확신을 느끼는 것처럼. 짧은 대화, 눈빛, 태도, 자세 하나로도 감정은 이성적 판단을 전복한다. 감정은 때로 이성보다 더 정확한 나침반이 된다.


그러나 감정은 우리를 압도하기도 한다.

화가 나서 말이 막히고, 슬퍼서 아무 언어도 사라지며, 기뻐서 표현이 불가능한 순간들. 이때 감정은 나를 집어삼키면서도 동시에 나를 나로 붙드는 무게가 된다. 겉으로는 잔잔하지만, 밑바닥에서 삶의 흐름을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는 조용한 파도,

그것이 감정이다.


철학자들은 종종 감정을 불완전한 인식이라 불렀다. 하지만 나는 감정을 가장 완전한 체험이라 부르고 싶다. 감정은 언어 이전의 언어, 이성 이전의 지성이다. 슬픔은 이해를 열고, 분노는 정의를 부르고, 기쁨은 사랑을 이끌어낸다. 감정은 행동의 동기이자 존재의 근거다.


무엇보다 감정은 관계 속에서 빛난다.

타인의 말 한마디에 무너지고, 눈빛 하나에 희망이 살아나며, 침묵 속에서도 공감이 전해진다. 감정은 나 혼자가 아니라는 증거이며, 타인과 연결될 수 있다는 신호다.

감정은 ‘나’와 ‘너’를 잇는 투명한 다리이며, 사랑과 용서, 기억과 상실이 그 다리 위에서 오간다.


감정은 계절처럼 변한다.

아침의 안도감이 오후에는 짜증으로, 저녁에는 외로움으로 바뀌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억누르거나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자체를 ‘그럴 수 있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우리는 감정을 통제할 수는 없어도, 감정을 담아낼 공간을 가꿀 수 있다. 그것은 여유이며, 자기 수용의 자비이고, 타인의 감정을 머물게 하는 포용이다.


감정은 마음의 색이다.

날마다 다른 색을 입은 채 우리는 살아간다.

회색의 날도,

푸른 날도,

새빨간 날도 있다.


그 불안정성 속에서 우리는 가장 인간적인 얼굴을 드러낸다. 감정은 숨길수록 선명해지고, 드러낼수록 모호해지며, 살아갈수록 진실해지는 마음의 언어다. 결국 감정은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모든 날들의 결을 짜 넣는 힘이다.


사랑과 그리움,

분노와 미움,

기대와 실망,

기쁨과 슬픔,

평온과 불안,

외로움과 충만함.

수많은 감정은 삶의 부산물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의 본질이다. 우리는 감정을 통해 세계를 경험하고, 자신을 이해하며, 타인을 받아들인다.

감정은 인간다움을 가능하게 하는 필연적인 동행이며, 한 사람의 서사를 이루는 근본적인 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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