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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혹시, 알고 계셨을까요?

크리스마스의 악몽

by 영업의신조이

이제 곧,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시작됩니다.

혹시, 알고 계셨을까요.



우리는 오래도록 크리스마스란 말을 따뜻함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퇴근길 유리창 너머로 보이던 노란 불빛들, 목도리를 고쳐 매며 지나던 사람들의 숨결, 장갑 낀 손으로 건네지던 작은 선물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잠시 멈춰 서서,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차오르던 저녁들. 어떤 이들에게 이 계절은 축제가 아니라, 더 깊이 가라앉는 밤이 되었고, 불을 끄고 누운 천장을 바라보며 오래된 이름들을 더듬는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베개를 적시던 밤들이, 그렇게 조용히 쌓여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이야기의 이름을 ‘악몽’이라 불렀습니다. 두려움을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따뜻하다는 말 뒤에 숨겨 두었던 균열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둠은 언제나 빛과 함께 태어나고, 차가운 마음의 틈에는 우리가 미처 건네지 못했던 체온이 남아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묻고 싶었습니다. 왜 이 계절이 더 아픈지. 그럼에도 왜 우리는 누군가의 곁으로 가고 싶은지. 왜 무너진 자리에서도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찾게 되는지. 이 질문의 끝까지 가 보기로 하며, 이 이야기는 공포보다 따뜻함을 먼저 품고 시작되었습니다.


이 공간에는 열두 개의 서로 다른 생이 모여 있습니다. 짧게는 스무 해, 길게는 반세기를 넘겨 살아온 시간들. 손에 쥔 것보다 놓쳐 버린 것이 더 많았던 날들, 침묵이 말보다 길었던 밤들, 다짐과 포기가 교차하던 선택의 순간들. 그렇게 만들어진 각자의 세계관과 가치관, 그리고 삶이 천천히 깎아 낸 철학들이 이 자리에 흘러 들어왔습니다. 이 글들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문장이 아닙니다. 각자의 생이 만들어 낸 작은 방 안에서, 시간이 닳아 만든 책상 앞에서, 마음의 떨림을 그대로 얹어 써 내려간 흔적들이었습니다. 잉크라기보다는 체온에 가까운 기록들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열두 개의 결이 ‘크리스마스의 악몽’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에서 겹쳐지기 시작했고, 이곳은 전시장이 아니라 조용히 불이 켜진 마음의 방이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장르가 아니었습니다. 시와 소설과 에세이라는 경계가 아니라, 각자의 삶이 남긴 감정의 밀도와 기억의 깊이였습니다. 당신이 혼자 삼켜 왔던 말들, 다시 살아나는 장면들, 입 밖으로 내지 못한 공포와 이유 없는 죄책감, 무너졌던 순간들과 설명되지 않던 침묵들이 이 공간에서 천천히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떨림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 순간 ‘우리’의 숨결이 되었습니다.


이곳은 작품을 알리려 하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등을 조심스럽게 기대는 장소가 되었고, 서로의 앞길을 대신 밝혀 주는 작은 불빛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악몽이 당신만의 것이 아님을, 당신의 침묵이 당신 홀로의 것이 아님을, 조용히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덮어 두지 않기로 선택했습니다. 오래 쌓여 있던 기억과 일부러 밀어 넣었던 감정과 손으로 눌러 묻어 버렸던 슬픔을 그대로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먼지와 모래와 자갈을 조심하지 않고 흔들었으며, 물아래 가라앉아 있던 것들을 하나씩 끌어올렸습니다. 이곳에서는 고통을 바라보기만 하지 않았습니다. 고통이 고통으로 남도록 방치하지 않겠다고, 조용히 스스로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문장으로 붙잡았고, 글로 건져 올렸으며, 삶이 남긴 이미지와 상징으로 서로의 손을 조금 더 따뜻하게 잡았습니다. 이곳의 악몽은 더 이상 막연한 공포가 아니었습니다. 말하지 못했던 어린 날의 떨림이 되었고, 숨겨 두었던 상처의 그림자가 되었으며, 이름 붙이지 못했던 트라우마의 잔해가 되었습니다. 무서웠던 존재들은 우리의 문장 안에서 더 이상 괴물이 되지 못했습니다. 형태를 얻은 공포는 우리를 집어삼키지 못했고, 말해진 악몽은 날카로운 이빨이 아닌, 품을 수 있는 온기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열두 명의 작가들은 이 자리에서 숨지 않았고, 피해 가지 않았으며, 더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글을 쓰지도 않았습니다. 각자의 가장 깊은 바닥까지 내려가, 가장 아픈 결을 문장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그것은 잔혹함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태도였고,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결단이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모이지 않았습니다. 가벼운 희망을 건네기 위해 손을 맞잡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악몽은 사라지지 않고, 슬픔은 쉽게 옅어지지 않으며, 어둠은 깨끗이 씻겨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우리는 치유가 아니라 ‘인지’를 선택했습니다. 존재를 지우지 않고, 존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악몽이 있다는 것, 슬픔이 거기에 놓여 있다는 것, 트라우마가 여전히 숨 쉬고 있다는 것, 그림자가 삶의 일부라는 것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여기 있구나. 나는 이런 아픔을 안고 있구나. 그리고 이 고통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아픔을 버리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트라우마를 지우라고 요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대신 그것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가슴을, 조금씩 서로에게 내어 놓기를 바랍니다.


이곳은 공포를 만들어 내는 공간이 아닙니다. 악몽을 소비하는 장도 아닙니다. 이곳은 악몽의 존재를 함께 바라보며, 그 어둠을 통과해 서로를 이해하고, 느끼고, 조용히 안아 주는 마음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울음을 멈추게 하기 위해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울면서도 서로를 향해 미소 짓는 법을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이제야, 그 소중한 이름들을 조심스럽게 부릅니다.

임경주, 여지나, 일상의봄, 오로지오롯이, Sylvan whisper, ToB, 선후, 통나무집, Yong, 윤지안, 그리고 Ubermensch.


이 이름들은 단순한 작가의 표식이 아닙니다. 각자의 생이 남긴 체온의 자국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오며, 각자의 밤을 견뎌내고, 각자의 방식으로 문장을 붙잡아 준 사람들. 이들은 동료이기 이전에, 같은 시대를 버텨 낸 따뜻한 이웃이고, 마음의 친구들입니다.


함께한 모든 시간 앞에서 고개가 숙여집니다. 혼자였다면 결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이 길을 함께 걸어 주셨다는 사실만으로도 깊은 감사를 느낍니다. 바쁜 삶의 무게 속에서도 이 이야기를 내려놓지 않고 끝까지 품어 주신 모든 작가님들께, 마음 깊이 존경과 감사를 전합니다. 이 여정의 진짜 이름은, 열두 개의 마음이 하나의 떨림으로 이어진 기록이라 믿습니다.


이제 이 이야기는 조용히 시작될 준비를 마쳤습니다. 위로가 아니라 공감으로, 해결이 아니라 동행으로, 희망이 아니라 존재를 확인하는 시간으로, 당신을 기다립니다. 악몽을 없애려 하지 않고, 악몽을 품은 채 함께 걷는 이야기의 장이 열립니다. 말하지 못했던 마음이, 서로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공간이 이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12월 1일부터,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시작됩니다.

함께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이루어낸 12명의 작가님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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