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존재는 이미 아름답다
12화.
덜어냄
‘깎여나간 자리에서 비로소 나를 만났다’
덜어낸다는 것은, 나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더해야 나아질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조금 더 성취해야 하고, 조금 더 단단해져야 하고, 조금 더 멋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곤 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아무리 더하고 더해도 채워지지 않는 자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 빈 곳은 새로운 것을 쌓아 올려야 채워지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오래 붙들고 있던 것들을 과감하게 덜어낼 때야 비로소 드러나는 자리였습니다.
이 깨달음은 제게 한순간에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내와 함께 세계일주를 하며 지나던 여러 도시들 중에서도,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만난 석조상들이 여전히 제 마음을 붙잡고 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 한복판에서 마주한 니케의 날개는 대리석이라는 물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진짜 깃털보다 더 바람을 감싸 안고 떨리고 있었습니다. 날개 끝에서는 미세한 깃털과 깃털 사이의 공간에 자리한 그림자들이 서로 얇게 포개져 있었고, 그 그림자들마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날개 표면의 깃털 형상은 매끈했지만 단조롭지 않았고, 빛이 스칠 때마다 깃털의 결 사이사이로 고요한 공기가 흔들리는 듯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 마음을 멈춰 세운 것은, 그 발이 땅에 닿아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마치 천사가 방금 하늘에서 내려와 아직 완전히 내려앉지도 않은 채 잠시 이 땅을 스치는 순간처럼, 그 자세는 아름답고 숭고했습니다.
그리고 니케 여신의 가슴과 복부, 허벅지와 종아리를 덮고 있는 얇은 옷자락의 하늘거림은 도저히 석조상이라고 믿기 어려운 감탄과 경외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람이 표현할 수 없는 예술의 극치가 여신 니케상으로 구현되어 있었습니다.
다비드의 몸은 더욱 놀라웠습니다.
마치 오랜 시간 몸을 갈고닦은 사람의 얇은 피부 아래에서 숨 쉬는 근육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근육과 근육 사이에서 살짝 솟아오른 혈관의 돌출, 특히 힘이 살짝 들어간 다비드의 오른쪽 손등과 전완근을 따라 이어지는 혈관의 모습은 석조상이 아니라 인간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약간의 긴장과 집중이 근육의 떨림과 혈관의 긴장감으로 대리석 표면 위에 고요히 떠오르는 듯했습니다.
다비드의 어깨에서 시작해 등과 허리로 이어지는 완벽한 비율의 구조, 엉덩이를 지나 허벅지와 종아리로 이어지는 근육의 표현, 그리고 마지막 발등과 발톱의 세밀한 부분들까지. 그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아름다움으로 석조상이라는 존재 자체를 단숨에 거부하는 듯 보였습니다.
눈 또한 돌로 만들어졌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깊고 또렷했습니다. 인간의 눈보다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시선, 그것은 무언가를 이미 결심한 얼굴이었습니다.
머리카락의 흐름은 바람과 함께 움직이는 듯했고, 다비드의 전신은 마치 주위의 공기를 옷처럼 걸치고 바람과 대화를 나누는 존재처럼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요소가 하나의 방향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고, 저는 그 앞에서 한동안 발을 떼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돌이 이렇게 될 수 있을까.’
감탄을 넘어 경외에 가까운 침묵이 몸 전체를 덮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한 조각가는 자신의 조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대리석 안에는 이미 완벽한 형상이 존재한다.
나는 그저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냈을 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안에서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번쩍임이 일었습니다. 저 완벽함은 ‘더함’의 결과가 아니라 ‘덜어냄’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그 사실은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삶의 무게를 단숨에 풀어내는 열쇠처럼 다가왔습니다.
살아오며 저는 늘 부족한 나를 감추기 위해 갑옷을 덧붙여 왔습니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지나 직장 생활을 이어 오며, 준비되지 않은 나를 보강하기 위해 더 붙이고 더 쌓고 더 채우려 애썼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보호 장치 하나였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는 철판 위에 철판을 덧댄 두꺼운 갑옷이 되어 있었습니다. 남들의 시선이 창이 되어 날아올까 두려울수록, 저는 더 단단한 금속을 덧입혔습니다. 그 갑옷은 제 어깨를 넓어 보이게 했지만, 호흡은 점점 짧아졌습니다. 움직일 때마다 안쪽에서 금속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났고, 제 몸의 체온 대신 차가운 금속의 온도가 먼저 느껴졌습니다.
부족하다는 부끄러움은 죄책감처럼 따라붙었고, 그래서 더욱 강해 보이기 위해 갑옷의 두께를 늘려 왔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지나 마흔을 넘어서며,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가 찾고 있었던 진짜 자아는 갑옷을 쌓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그 갑옷을 벗겨내는 순간들 속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한 조각, 또 한 조각 벗겨낼 때마다 아프고 쓰리게 스며드는 공기와 함께 드러나는 피부가 있었습니다. 그 맨살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그동안 숨기려 했던 내가 비로소 빛을 마주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차가운 바위 속에 갇혀 있던 “나”가 미켈란젤로의 망치와 끌을 만났을 때, 우리는 쉽게 그 시작을 파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그것은 파괴가 아니라 정교한 해방의 기술입니다. 나를 부수려는 손길이 아니라, 나를 감싸고 있던 불필요한 층들을 하나씩 떼어내려는 섬세한 마음입니다. 고통처럼 느껴졌던 순간이 사실은 나를 향한 가장 정확한 접근이었음을, 우리는 시간이 지나서야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덜어냄의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시련, 외로움, 깊은 성찰의 밤들,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가”
라는 절망의 순간들조차 사실은 대리석에서 먼지가 떨어져 나가는 과정에 가까웠습니다. 망치의 울림이 두려움처럼 들릴 때도 있었고, 끌 끝이 닿는 순간마다 상처가 깊어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돌과 먼지를 구분하는 일,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하는 일은 언제나 약간의 통증을 동반합니다. 고통은 나를 부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안의 형상을 드러내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이제는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깨달음의 순간을 저는 시로 먼저 적어 두었습니다.
시 「덜어냄」에서,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차가운 바위 속
나는 숨죽여 있었다
그러다
망치의 울림
끌 끝의 속삭임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두려웠지만
그는 나를 베지 않았고
내가 아닌 것들만
조용히 떼어냈다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정확함이었고
공포가 아니라
해방이었다
깎여나간 자리에서
비로소
진짜 나를 만났다
나는 너에게 말한다
덧붙이려는 너는…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
.
.
.
캘리시집 <당신의 존재는 이미 아름답다> 중에서...
이 에세이의 바탕이 된 이 시는, 제가 삶을 통과하며 경험했던 그 떨림을 가장 가까운 숨결로 기록한 고백입니다.
망치의 소리와 끌의 촉감이 두려움에서 해방으로 바뀌어 가는 그 찰나, 바위 속에 잠들어 있던 얼굴이 조금씩 드러나던 장면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서 재현한 기록입니다.
덜어낼수록,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내가 비로소 드러났습니다. 대리석 안의 다비드가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것처럼, 저 역시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다만 오랜 시간 동안 덧붙여 온 것들이 너무 많아 스스로를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이제는 압니다.
진짜 나를 만드는 것은 새로운 갑옷이 아니라, 오래된 갑옷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라는 것을.
두려워 떨던 바위 속의 “나”가 마침내 자신을 향해 고개를 드는 그 조용한 순간이라는 것을...
그래서 저는 이제 누군가에게, 그리고 오랜 시간 갑옷 속에 갇혀 있던 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덜어낸다는 것은 잃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되찾는 일이라고.
깎여 나간 자리에서야
비로소
드러나는 빛이 있고,
무너져 내린 조각들 사이에서야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하는 얼굴이 있습니다.
덜어냄은
내가 사라지는 과정이 아니라,
마침내 나로 돌아가는 여정입니다.
"덧붙이려는 당신은, 이미 충분히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