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머무는 자리

당신의 존재는 이미 아름답다

by 영업의신조이

14화.

흐름 속에 머문 하루



예전에는 하루를 늘 의지로 끌어당기며 살아왔습니다. 계획을 세우고, 마음을 다잡고, 끝까지 밀어붙이면 결국은 해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이뤄낸 것들도 많았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열심히’라는 단어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한 살, 한 살 쌓이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아무리 애써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있고, 끝내 이룰 수 없는 것들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요...


처음에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바람을 피하려 애썼고, 파도를 어떻게든 가라앉히려 노력했습니다. 감정도 사건도 빨리 정리해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바람은 막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대로 맞이하는 것이고, 바다에 일렁이는 파도는 억지로 잠재울 것이 아니라 일렁이도록 두어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어옴과 흔들림은 그 자체가 제거되고 사라져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 순간 또한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불어닥치는 사건들과 마음속에서 출렁이는 감정들을 통해 느끼고, 배우고, 알게 되고, 깨닫게 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쟁취하는 것보다 더 크고 의미 있는 것이며, 다가올 나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시로 적어 두었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은

그대로 맞이하고

일렁이는 물결은

잠재우려 하지 않는다


시집 <당신의 존재는 이미 아름답다> 중에서...


이 몇 줄은 요즘의 제 하루를 대하는 태도이자, 지금의 저 자신을 가장 솔직하게 담아낸 기록입니다.

예전에는 바람을 피하려 애썼고, 물결을 잠재우려 서둘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 바람이 오늘의 나를 통과하도록 두고, 파도의 물결이 감정들을 흔들린 채로 지나가도록 허락합니다.


출근길의 태도도 그러했습니다.

생계를 위해 무거운 발걸음을 힘겹게 떼어내며, 산더미 같은 서류들 속에 제 어린 꿈 하나를 조용히 접어 두었습니다. 글쓰기, 피아노 연주, 그림 그리기 같은 창의적인 꿈들 말입니다.


경제적 삶의 현실 앞에서 아직 시작하지 못했을 뿐,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다시 펼칠 수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잠시 보관해 두었던 어릴 적 소중한 꿈들을, 저는 이제 하나씩 꺼내 보기 시작했습니다. 성인 피아노 학원을 등록하고, 브런치에 글을 쓰며 작품을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이유로 비슷한 꿈을 그렇게 접어 두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하루는 최선을 다해, 후회 없는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제 와이셔츠에는 여전히 땀과 열기가 스며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 하루를 마치고 침대에 눕는 그 순간, 단 하나의 후회도 아쉬움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일터에서 겪는 서러움과 관계의 무게도 셔츠에 함께 배어듭니다. 다만 예전처럼 그것들을 억지로 밀어내려 하지는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을 오늘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담담히 하루를 살아갑니다.



제 하루의 끝에서 가장 먼저 말을 거는 것은 소중한 발바닥입니다. 하루의 무게와 고단함이 가장 먼저 내려앉는 자리이자, 오늘을 끝까지 걸어온 몸에 대한 감사가 머무는 자리입니다. 그 감각이 발바닥에서 시작해 온몸으로 스며들 때, 저는 조용히 스스로 안도합니다.


발바닥을 짓누르는

하루의 무게와 고단함이

온몸으로 스며들어…


이 글은 삶에 대한 의지를 내려놓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전히 열심히 살고 있고, 여전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삶의 증거를 담아낸 글입니다.


다만 그 위에 하나의 수용의 태도가 더해졌을 뿐입니다. 삶 전체의 흐름을 믿고, 이루어지지 않는 것들마저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집으로 향합니다.


그렇게 살아낸 하루라면,

오늘은 흐름 속에 잘 머물렀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힘든 역경 속에서도 오늘 하루를 살아낸 여러분을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


올 한 해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언제나 건강하세요.

Happy New Year!



캘리그라피 by 인정 이영애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