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해부학

2부: 의지와 실천으로 다시 쓰는 마음의 구조

by 영업의신조이


28화.

인생의 고난이 우리를 데리고 가는 곳 _ 존재의 깊이를 단단하게 하는 시간에 대하여



인생을 오래 들여다보면 이유를 끝내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행복을 예고하는 신호가 없었다고 말하고, 또 어떤 이들은 불행의 그림자가 저 멀리서부터 천천히 기어오르는 소리를 들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이 번갈아 가며 오는 파동 속에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이 리듬은 마치 낮과 밤이 바뀌고, 밀물과 썰물이 순환하며, 계절이 봄·여름·가을·겨울로 흐르는 것처럼 자연의 질서와도 흡사하다.


낮이 따스한 온기를 품는다면, 밤은 인간의 고독을 시험하는 듯한 어둠을 품고 있다. 밀물은 생명력을 밀어 올리고, 썰물은 드러난 갯벌처럼 우리의 결핍을 드러낸다.


이 순환이 자연의 질서라면 인간의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설렘과 권태, 환희와 고통, 기쁨과 좌절은 우리가 살아 있음이 만들어 내는 자연스러운 맥박이며, 감정의 날씨는 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끊임없이 진폭을 바꾼다.



이 변화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종종 억울함을 말한다.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오는가, 왜 지금이어야 하는가, 왜 연달아 안 좋은 일만 겪어야 하는가. 그러나 존재를 깊숙이 들여다보면 지금의 ‘나’라는 존재가 형성되기까지는 반드시 절반의 고난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어느 지점에서 이해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의 나라는 결과물은 인생의 절반을 차지했던 고통과 시련, 불안과 좌절, 실패와 상실이 만들어 낸 필연적 조합이다. 그것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과의 법칙은 그렇게 정직하다.


우리가 자라온 시간 속에서 행복한 일들이 절반을 이루었다면 불행 역시 동일한 비율로 우리를 만든 것이다. 그 고통의 몫이 불편하다고 해서 존재로부터 떼어 낼 수는 없다. 그 고통을 통과한 우리가 지금의 우리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자연에서도 늘 확인된다.

강렬한 여름의 햇살을 견디지 못한 벼는 결코 가을에 황금빛으로 익어 가지 않는다. 복숭아와 사과와 배도 충분한 햇볕을 견디지 못하면 탐스러운 열매가 될 수 없다. 벚꽃 역시 혹독한 겨울의 칼바람을 통과하지 않으면 봄에 그 압도적인 흩날림을 펼쳐 보일 수 없다. 꽃잎이 아름다울수록 그 이전의 겨울은 매섭다.


그러니 인간도 다르지 않다. 고통을 겪는 순간은 비록 차갑고 잔인하게 느껴지지만, 그 시간을 견디는 동안 우리의 뼈는 단단해지고 감정의 폭은 깊어지며 세계를 이해하는 스펙트럼은 넓어진다. 우리는 그러한 시간을 통해 전혀 다른 형태로 재구성된다.




코로나 시절,

나 역시 이 진실을 삶으로 증명했다. 해외 영업이라는 직업 특성상 코로나로 인해 매출은 반 토막, 다시 반 토막으로 떨어졌다. 회사에서의 입지는 점점 흔들리고 조직 간 갈등은 커졌으며, 결국 머리를 삭발하며 버텨야 했던 시기였다. 누구도 그 시간을 ‘필요했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바닥에서 가라앉는 삶 속에서, 절실한 마음 끝에 새롭게 인생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은 여섯 권의 책을 낸 작가의 삶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이 전환의 비밀은 고통 속에 숨어 있었다. 버티는 동안 단단해지고, 무너지는 동안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인생은 늘 지루한 산문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시처럼 전환되기도 한다.


그래서 고난은 우리를 부수러 온 것만은 아니라는 관점을 가져 볼 필요가 있다. 그 고통의 순간이 나의 미래의 더 큰 행복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의 용량을 넓히기 위해 찾아온 존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애니메이션이 이를 증명한다. 가장 재미있는 작품은 언제나 비슷한 구조를 가진다. 주인공은 기승전결에서 ‘전’까지 무수한 고난을 겪는다. 배신과 상실, 추락과 절망, 두려움과 좌절을 통과하며 끝없이 밀려난다. 그러나 그 기폭이 클수록, 다루는 고통의 깊이가 넓을수록 마지막의 ‘결’은 더 찬란하고 압도적인 희열을 남긴다.


엔딩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행복의 양이 아니라 이전에 견뎌 낸 고통의 농도와 규모다. 그 비례 관계는 언제나 정직하게 독자와 시청자의 피드백 속에서 확인된다.


그러니 내 인생의 고난이 깊게 느껴질수록, 이것은 오히려 신호다. 나의 미래가 더 행복해질 준비를 하고 있다는 신호. 무너지는 만큼 다시 세워질 것이다.


우리는 결국 하나의 드라마를 써 내려가는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받아들여야 할까. 결론은 단순하다. 고통은 나를 벌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나를 ‘지금의 나’가 되게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구성 요소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시간 속에서 기쁨과 괴로움이 정확히 절반씩 존재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이라는 결과물로 서 있다. 그러니 나에게 닥친 어떤 어려움이든 그것은 나의 존재를 완성하는 조각 중 하나였다.


고난은 내 편이었다.

나를 무너뜨리러 온 것이 아니라 나를 준비시키기 위해 온 것이었다.


인생의 깊이는 그렇게 완성된다.

내가 버텼던 밤이 길수록 아침은 밝아지고,

내가 견뎌 낸 겨울이 혹독할수록 봄은 찬란하며,

내가 넘었던 파도가 높을수록 내 안의 바다는 더 넓어진다.


그러니...

앞으로 또 어떤 고통이 찾아오더라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나의 해피 엔딩을

더 빛나게 하기 위한

서곡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주인공 by 영업의신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