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머무는 자리

당신의 존재는 이미 아름답다

by 영업의신조이

19화.

멀어져야 보이는 것들



해외영업 일을 하며 중남미 출장을 가게 되면, 그 여정은 늘 길고 복잡합니다. 한 번에 닿을 수 있는 땅이 아니어서 미국을 거쳐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야 하고, 짧아도 서른여덟 시간, 길면 마흔두 시간 가까이 비행기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지역 출장은 1년에 한 번, 갈 수 있을 때 가능한 모든 바이어를 만나고 돌아오는 일정으로 잡히곤 합니다. 멕시코에서 시작해 칠레까지 내려가거나, 브라질에서 출발해 페루를 지나 파나마를 거쳐 다시 멕시코로 올라오는 식의 이동이 반복됩니다.


국가별로 하루에 최소 한 명 이상은 만나야 하다 보니 일정은 늘 촘촘합니다.

그렇게 한 달을 훌쩍 넘겨, 길게는 사십오일 가까운 출장을 이어가다 보면 하루하루는 생각보다 훨씬 버겁습니다.


낯선 음식과 낯선 시간대, 끊임없는 이동 속에서 몸은 서서히 소모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하루를 버틴다는 감각만 남습니다. 잘 먹고 있다는 말이 사치처럼 느껴질 정도로 몸은 점점 무뎌집니다.


그렇게 긴 시간을 건너 한국으로 돌아와 집에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식탁 위에 놓인 하얀 쌀밥 한 공기와 김치 한 조각을 마주하는 순간, 생각보다 큰 감정이 먼저 올라왔습니다. 너무 맛있어서라기보다, 너무 오래 멀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늘 곁에 있었기에 고맙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들이, 떨어져 있던 시간 끝에서야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목이 메고, 가슴이 저릴 만큼요.


그 감정은 설명보다 먼저, 짧은 문장으로 내려앉았습니다.

.

.

멀어져야 보이는 것들


장기 출장,


마침내

사십오일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목이 메도록 맛있고

가슴 저리도록 소중한 것


늘 곁에 있었기에

미처 몰랐던 그것을


이제야

절실히 안다


따뜻한 쌀밥

한 숟갈


김치

한 조각

.

.

.

캘리시집 <당신의 존재는 이미 아름답다> 중에서...


이 짧은 시는 음식에 대한 기록이 아니었습니다.

거리의 기록이었습니다. 멀어졌기 때문에 비로소 살아난 감각, 그리고 그 거리 덕분에 드러난 마음에 대한 고백이었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깨달음은 또 다른 형태의 거리 속에서도 찾아왔습니다.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몸이 이미 많이 지쳐 있었는지 고열이 오르고 감기 기운에 오한이 몰려왔습니다. 너무 춥고 떨려서 중간 경유지였던 태국 공항에서 약국을 찾아 해열제와 감기약을 먹었지만, 몸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저는 승무원들에게 담요를 다섯 장, 여섯 장씩 덮어 달라고 부탁하며 몸을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덮고 있어도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는 가시지 않았습니다.


공항에 도착해 입국 심사를 앞두고 검역을 받는 과정에서 결국 고열로 분류되었습니다.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전염병 의심으로 격리 조치가 이루어졌습니다. 유리로 둘러싸인 소독실에서 이 주 가까운 시간을 혼자 보내야 했습니다. 면회는 허용되지 않았고, 가족의 얼굴도 직접 볼 수 없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그토록 물리적으로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퇴원하던 날,

건강한 상태로 병원을 나와 처음으로 아내의 손을 잡고 아이의 볼에 얼굴을 비볐을 때, 저는 그 촉감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손의 온기, 아이의 볼이 닿는 감각이 그렇게 아름다운 순간일 줄은 몰랐습니다.


늘 곁에 있었기에 의식조차 하지 않았던 접촉이, 멀어졌다가 다시 돌아온 자리에서야 비로소 온몸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때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멀어져야 보이는 것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밥 한 공기와 김치 한 조각처럼, 손을 잡는 일, 볼을 비비는 일, 함께 숨을 나누는 순간들 역시 거리와 부재를 통과해야 비로소 그 무게를 드러낸다는 것을요.


그래서 이 시는 그리움이나 후회를 말하려고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멀어짐이 만들어 낸 감각을 통해, 아직 곁에 있을 때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묻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언젠가 잃고 나서야 알게 될 소중함을,

가능하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먼저 알아차리고 싶다는 바람이었습니다.


무엇을 더 가지라고 말하지 않고, 이미 충분히 받고 있으며 이미 많은 것들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건네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거리와 시간들이 결코 헛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가까워진 지금에도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글과 시가 누군가에게도 그렇게 닿기를 바랍니다.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미 충분히 잘 견디고 있다고, 아직 곁에 있는 것들을 조금만 더 따뜻하게 바라보아도 괜찮다고 말해 줄 수 있기를요.


멀어짐의 끝에서 쓰였지만,

이 시는 결국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들을

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캘리그라피 by 인정 이영애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