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만나지 않은 너에게
2화.
달 아래서 우주를 접다 _ 영수, 조선의 밤에 꿈을 띄우다
조선 영조 23년 여름.
세상은 고요했지만, 우주는 그 밤도 무수히 돌아가고 있었다.
한양 근교의 작은 한옥.
붉은 기와 아래 단정히 놓인 서재에서, 일곱 살 난 소년 영수는 마루 끝에 앉아 조심스레 붓을 들어 공자의 문장을 베껴 쓰고 있었다.
서까래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이 종이 위에 길게 드리워졌고, 먹물의 농담은 그 달빛을 따라 그림자처럼 번지고 있었다.
영수의 손끝은 공들여 한 획, 한 획을 그어갔지만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있었다.
창호지 너머로 스며드는 여름밤의 공기, 그 속에 섞인 풀벌레 소리와 멀리서 들리는 개 짖는 소리.
세상은 잠든 듯 보였지만, 영수의 가슴은 알 수 없는 설렘으로 조용히 뛰고 있었다.
"사람은 어질어야 한다. 공경하는 마음이 근본이다."
문장의 뜻을 따라 쓰며 외워야 했지만, 영수의 마음은 문장이 아닌 하늘을 향해 열려 있었다.
붓을 내려놓고,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둥근달이 조용히 떠 있었고, 그 주위로 수많은 별들이 조심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영수는 느릿하게 숨을 쉬었다.
그 숨결 안에 질문이 있었다.
"이 넓은 하늘 너머에도… 우리처럼 숨 쉬는 이들이 있을까?"
그 질문은 막연한 상상이라기보다, 마치 오래전부터 가슴속에 품어온 비밀처럼 느껴졌다.
어른들이 말하는 천상의 신, 천주와는 다른, 또 다른 존재의 가능성.
영수는 몸을 살짝 일으켜, 작은 걸음으로 대나무자리 깔린 방을 가로질러 탁자 앞으로 다가갔다.
그곳엔 방금까지 자신이 베껴 쓰던 화선지가 한 장,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영수는 종이를 집어 들며 잠시 망설였다.
붓글씨를 위해 주어진 귀한 종이였지만, 그는 그 용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꾸고 싶었다.
종이의 한쪽을 접고,
다시 반을 접고,
모서리를 맞추며 천천히 손끝에 힘을 실었다.
그의 손가락은 섬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마디마디에는 어떤 결심이 배어 있었다.
종이비행기가 되어가는 그 순간, 영수의 표정은 마치 우주를 만들어가는 어린 신처럼 진지했다.
이윽고 완성된 작은 비행기 하나.
영수는 그것을 품에 안고 조용히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갔다.
흙냄새가 스며든 공기, 벌레들이 쉬이 잠들지 못하고 내는 여름밤의 소리.
영수는 그 마당 한가운데 서서,
무릎을 굽히고 바닥에 기어 다니는 개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의 손가락이 조심스레 개미 한 마리를 감싸 안았다.
개미는 놀라지 않았다.
아니, 영수의 따뜻한 체온 속에서 마치 잠시 쉬어가는 듯 얌전했다.
영수는 개미를 조심스럽게 종이비행기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네가 나를 대신해 다녀오는 거야. 하늘 너머, 저 달빛 너머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에게.”
그 말은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 같았다.
비행기를 가볍게 손 위에 올리며, 그는 몸을 낮춰 바람의 방향을 살폈다.
바람은 느렸다. 그러나 고요하지 않았다.
그의 손끝은 약간의 떨림을 감추지 못했고, 이내 작은 한숨을 토해내듯 속삭였다.
“부디… 닿기를.”
아이의 손에서 놓인 그 작은 비행기는, 날개를 펴고 부드럽게 공기를 가르며 떠올랐다.
그 순간, 영수는 마치 자신의 의식이 그 개미 안으로 들어간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손을 놓는 그 찰나, 그는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르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자신이 만든 세계 속을 자신이 경험하는 기이한 감각.
그 비행기의 궤적은 어둠 속에서 별자리 하나를 그려내듯 유연했고,
그 선은 영수의 마음에서 시작되어 하늘로 이어졌다.
별빛은 멀리서 반짝였고, 달은 그 여정을 조용히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영수는 느꼈다.
이 세상은 끝이 아니고, 질문은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그날 밤,
조선의 한 아이는 붓이 아닌 비행기로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있는가, 없는가’의 논쟁이 아닌,
‘있다면 얼마나 멀리 닿을 수 있을까’라는,
끝을 모르는 마음의 확장이었다.
그리하여 영수는, 달 아래서 우주를 접어 올렸다.
고요한 마당 한가운데에서, 이 세계 너머의 세계를 향해 가장 어린 방식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의 질문은 바람을 탔고, 그 바람은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에게 도착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