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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넥트 2041

누구도 만나지 않은 너에게

by 영업의신조이

4화.

시간의 항아리와 두 아이의 만남 _ 한 장의 종이비행기가 270년을 날아가 닿은 마음


가을이었다. 2041년, 서울.

서늘한 바람이 인사동 골목 사이를 헤집고, 은행잎이 바닥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햇살은 뉘엿뉘엿 건물 사이로 흘러내렸고, 오래된 전시관 앞 유리창에는 흐린 빛이 반사되어 낮과 밤의 경계가 묻어났다.


그 창 앞에 선 여인은 27년 전, 종이비행기를 날렸던 한 소녀였다.


에밀리.

이제 그녀는 서른다섯 살의 한국문화 연구자이자, 유네스코 복원 프로젝트의 국제 협력 책임자였다.


에밀리는 유년 시절 내내 질문이 많은 아이였다.


‘하늘 끝엔 뭐가 있을까?’


‘외계인은 진짜 있을까?’


‘우리도 누군가에게 외계인처럼 보일 수 있을까?’


그녀가 처음 한국 문화를 접한 건, 열 살 무렵 BTS와 블랙핑크를 통해서였다. 한류는 단순한 K-POP을 넘어서 그녀의 감성과 삶의 철학까지 건드렸다.


음악,

드라마,

한글,

음식,

그리고 전통…

어느 순간 그녀는 매주 한지공예와 서예 수업을 듣고, 박물관에서 백자를 바라보며 그 안에 숨겨진 시간을 더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시간은 흘렀고,

그녀는 서울 소재 한국문화연구소의 박사과정을 마친 뒤, 국제협력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위치에 섰다.


이번 복원 작업은 유네스코와 공동으로 추진되던 ‘백자에 깃든 시간’ 프로젝트의 일환이었고, 에밀리는 ‘비공식 국제 문화 사절단’ 같은 마음으로 다시 서울을 찾았다.


그 계절이 마침 가을이라는 것도 그녀에게는 각별했다. 차분하고 성숙한 공기, 그리고 무언가 오래된 이야기를 듣기 좋은 계절.


그날,

에밀리는 인사동 골동품 거리 안쪽에 있는 오래된 전시관에서 하나의 백자를 마주했다. 빛이 바래고 유약이 흐려졌지만, 무언가 이상하리만치 오래되고 맑은 기운이 감돌았다.


가이드가 조심스레 말했다.


“이 항아리는 조선 영조 23년 무렵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내부에서 한 장의 종이비행기가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사용된 화선지로 접은 것이며, 안쪽에는 글귀가 먹으로 쓰여 있었습니다.”


에밀리는 숨을 삼켰다.


"종이비행기!"


그 단어 하나만으로도 시간의 숨결이 살결 위로 밀려들었다.


그녀는 백자 속에서 꺼낸 그 종이를 정성스레 펼쳤다. 고요한 붓질로 접힌 곡선, 다림질하듯 반듯한 주름, 그리고 그 안쪽에 작은 한문 글귀 하나.


— 天外亦有人乎

하늘 너머에도 사람 있나이까?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에밀리는 여덟 살 런던의 어느 흐린 겨울 오후를 떠올렸다. 자신 역시 종이비행기를 접어 작은 개미를 태우고 날려 보냈던 기억. 그때 속으로 중얼거렸던 문장이 되살아났다.


“혹시… 저 하늘 너머에도 나 같은 아이가 있을까?”


그 두 문장은 270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완벽하게 겹쳐졌다.


두 아이는 서로 몰랐고,

만난 적도 없었지만, 종이와 하늘을 사이에 둔 질문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영수는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꿈을 띄웠고,

에밀리는 그 꿈의 꼬리표를 쥔 채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그 실을 다시 붙잡은 것이다.


공기는 박물관 특유의 정적 속에서 멈춘 듯했고, 한지에서 은은하게 올라오는 먹의 냄새와 백자 속에서 퍼져 나온 습기 냄새가 그녀의 후각을 자극했다. 손끝은 종이의 오래된 섬유결을 느끼며 감각적으로 시간을 더듬었고, 청각은 천장의 에어컨 소리보다 종이의 접힘이 다시 살아나는 듯한 환청을 붙들었다.


육감은 조용히 속삭였다.


“그 아이는 나였고, 나는… 그 아이였어.”


에밀리는 미소를 머금은 채 종이비행기를 조심스레 다시 접었다.


그것은 단지 유물 복원이 아니라, 하나의 마음이 또 다른 마음에게 인사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밖으로 나가, 창가에 섰다.

서울의 하늘은 유난히 맑았고, 햇살은 종이 날개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이번엔, 누군가가 또 받아주기를…”


그녀는 속삭이며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종이는 가볍게 떠올랐다.

영수의 시간에서 에밀리의 시간으로,

그리고 이제 또 다른 아이의 시간으로.


시간은 다시 항아리를 준비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아직 만난 적 없는,

그러나 반드시 만날 ‘너’를 위해...


진심 어린 질문은 시간을 건너고, 마음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다. 종이비행기는 그저 종이가 아니었고, 마음이 건네는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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