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시베리아에 빠지다 16
가장 비현실적인 자연의 연출을 상상해본다. 동해안을 거슬러 오호츠크해 쿠릴열도와 베링해 알류샨열도에서 알래스카로 이어지는 섬들, 선사시대 우리 선조들의 고래잡이 길이다. 대륙사냥이 한창이던 러시아탐험대 비투스 베링의 이름을 딴 삼태기 모양의 베링해 꼭지 점, 유라시아끝단과 북아메리카끝단에 서울 천안 간 직선거리의 해협이 있다. 한때 해저터널건설광풍이 불기도 했던.
빙하기 고아시아족이 설피를 신고 캄차카반도에서 알래스카로 건너가 아메리카대륙의 원주민이 되었다는 시베리아 에스키모와 아메리카 에스키모가 형제처럼 살던 그 곳. 러시아에 보물창고를 안기고 괴질병으로 숨을 거둔 그는 수차례 탐험에 나섰던 그곳 베링섬에 묻혔다. 크림전쟁패망으로 재정이 고갈된 러시아차르가 봉이 김선달 뺨치는 행각으로 목돈을 챙기려 알래스카와 원주민 알류트족을 통째로 미국에 팔아넘겼다.
환태평양 불의 고리 쓰나미파도와 마주한 긴 혹한에도 북방이끼가 자라 순록을 키우고, 바람이 스쳐간 자리 풀씨가 날아와 꽃들의 향연을 펼치는 해안가 모래둔덕 해당화군락이 계절을 손짓하며 해식동굴 안 물개가 헤엄치고 새들이 보금자리를 트는 베링해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바다여신 아그나와 범고래 카약은 사라지고 침입자들의 모터보트와 총 알콜 착취와 노예 전염병으로 멸종된 그 땅의 주인들에겐 신성한 대지와 바다에 대한 능욕이 아닐까.